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기관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3%대로 올려잡는 것은 예상보다 강한 반도체 수출 및 생산, 설비투자가 성장세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으로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늘고 관련 기업의 투자까지 확대되면서 당초 부진할 것으로 봤던 한국 경제의 성장 눈높이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 주요 기관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수개월 사이 크게 뛰었다. 그 중 가장 큰 폭으로 전망치를 끌어올린 곳이 OECD다. OECD는 23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로 제시했다. 지난 6월 전망치인 2.6%보다 1.1%포인트나 높인 것으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상향폭이 가장 크다. 내년 전망도 기존 1.9%에서 2.6%로 0.7%포인트 올렸다. 올해 3월(1.7%)과 비교하면 6개월만에 전망치를 2%포인트나 상향했다. 올해는 ‘강한 수출·생산 증가세’가 주도하고, 내년에는 수출 중심의 성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완만한 소비 회복도 성장에 힘을 보탤 것으로 내다봤다.
OECD는 AI 확산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투자·생산·무역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도 2.9%로 기존보다 0.1%포인트 높였다. AI 관련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동전쟁 등 대외 충격에도 각국 경제가 상당한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내년 전망은 3.0%로 0.1%포인트 낮췄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이날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3.2%로 올렸다. ADB는 최근 제조업 지표가 견조한 흐름을 보인 데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가 수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반영했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기업 실적 개선에 따른 민간소비의 완만한 회복도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봤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 역시 2.0%에서 2.3%로 상향했다.
이 밖에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3.2%로 0.7%포인트 높였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달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3.3%로 올려잡고, 내년 성장률 전망도 2.1%에서 2.9%로 상향했다. 반도체 사이클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반영됐다.
다만 높은 경제성장률이 곧바로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OECD는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3.0%로 0.4%포인트 높였고, 내년 전망도 2.2%에서 2.7%로 0.5%포인트 상향했다. 성장률 전망이 크게 높아진 데다 6월 전망 당시보다 국제 에너지가격 전망이 높아진 점 등이 물가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봤다. 다만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은 올해와 내년 모두 G20 국가의 평균치인 4.1%, 3.6%보다 낮은 수준이다.
같은 날 ADB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2.7%로 기존 전망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과 국내 수요 강세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이 이를 일부 상쇄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에너지가격 상승 압력이 완화되고 긴축적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물가 상승률이 2.2%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강력한 성장 전망에 대외 변수도 남아있다. OECD는 국제 에너지가격이 올해 4분기 이후 점차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에너지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거나 엘니뇨 등 기상 악화로 공급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 장기 국고채 금리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을 주요 하방 위험으로 꼽았다. 반면 중동전쟁이 조기에 끝나는 것은 상방 요인으로 제시했다. OECD는 “AI 확산이 투자와 생산을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관련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와 높은 레버리지 의존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