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현지식이 ‘한국의 맛’을 입고 있다. 서양의 대표 한 끼 식사인 샐러드의 드레싱에 고추장이 들어가고 김치 페이스트를 바른 샌드위치가 등장했다. 해외 소비자들이 현지의 한식당을 찾거나 한인마트 등에서 한국산 식품을 구매하지 않고도 현지 메뉴를 통해 자연스럽게 K푸드를 접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K푸드가 김치·라면 등 개별 제품 단위로 인기를 끄는 단계를 넘어 글로벌 식품업계가 신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일종의 ‘맛’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식재료는 고추장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고추장 수출액은 4601만 달러(약 622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0.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소스류 수출액 증가율 3.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실제로 해외에서 고추장을 적용한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미국의 샐러드 체인업체 ‘저스트 샐러드’는 올 6월 여름 시즌 메뉴로 ‘고추장 치킨 마켓 플레이트’와 ‘고추장 치킨 랩’ 등을 선보였다. 영국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도 ‘코리안 스타일 스파이시 고추장 치킨 샌드위치’ 등을 내놨다. 영국 M&S(막스앤스펜서)는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결합한 ‘고추장 마요’까지 내놨다. 맥도날드는 한국맥도날드가 개발한 ‘고추장 버터 소스’를 이용한 메뉴를 아시아 13개국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글로벌 맛·영양 솔루션 기업 케리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출시된 고추장 관련 신제품은 전년 대비 120% 증가했다. 글로벌 식품·음료 시장조사업체 이노바 마켓 인사이트도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고추장 관련 신제품의 47%가 한국 이외 지역에서 출시됐다고 분석했다.
김치를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상 오푸드는 빵이나 샌드위치, 비스킷 등에 발라 먹는 ‘김치 페이스트’ 2종을 내놨으며, 영국의 피클·발효식품 브랜드 바다즈(Vadasz)는 ‘김치 케첩’을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 보드카 등에 김치를 섞은 ‘김치 블러디 메리(Kimchi Bloody Mary)’ 칵테일이나 김치 파스타, 김치 후무스 등과 같이 김치를 활용한 현지 음식 레시피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정 식재료를 넘어 ‘코리안 스타일’을 하나의 맛으로 내세우는 제품도 나왔다. 펩시코의 글로벌 스낵 브랜드인 도리토스와 레이즈는 각각 ‘코리안 스타일 BBQ’와 ‘코리안 스타일 프라이드 치킨’ 맛 제품을 선보였다. 글로벌 버거 브랜드인 쉐이크쉑은 올 1월 ‘K-쉑 프라이드 치킨 바이트’와 ‘K-쉑 스파이시 카라멜 쉐이크’를 새롭게 출시했다. 네슬레의 식품 브랜드 매기는 올 6월 ‘고추장 비프’ ‘김치 치킨’ ‘스파이시 치즈’ 등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인스턴트 라면 3종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K푸드의 글로벌 확산이 완제품에서 ‘맛’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는 해외에서 높아진 한식 인지도가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2025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식 인지도는 68.6%로 전년보다 2.9%포인트 상승해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식에 대한 호감도와 향후 한식 취식 의향도 각각 71.4%와 80.6%로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소비자가 반드시 한식당을 찾지 않아도 맥앤치즈나 샐러드, 샌드위치, 감자칩 등 평소 즐겨 먹는 음식 속에서 한국의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며 “K푸드가 한국의 맛(K플레이버)이 현지 식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