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피와이코인(JPYC)이 국내 1위 코인 거래소 업비트에 상장된 지는 5일밖에 안 됐다. 하지만 국내 이용처가 늘고 엔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면서 지금대로라면 테더(USDT)에 이어 또 하나의 국내 자금 이탈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JPYC는 국내 성형외과 같은 제휴 병원 결제에 이용하면 최대 15% 상당의 금액을 캐시백해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을 위한 법적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엔화 코인은 각종 혜택을 앞세워 국내외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라인 메신저 내 미니앱 ‘유니파이’는 JPYC 예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JPYC를 유니파이 지갑에 보관하면 자동으로 별도의 만기나 중도 인출 제한 없이 연 2%의 이자가 매일 지급된다. 예치 한도도 없다. 서비스 출시 초기에는 최대 연 5%의 이자를 지급하는 이벤트까지 진행했다.
JPYC를 결제에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소비처도 다양하다. 유니파이에서는 JPYC로 올리브영과 다이소·CU·이마트24 등 국내 인기 브랜드의 모바일 상품권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만 원권 올리브영 모바일 상품권은 이날 기준 정가가 5663엔이지만 할인과 캐시백 혜택을 모두 적용하면 최대 15% 저렴한 4842엔에 구매할 수 있다.
상품권뿐 아니라 병원 진료 같은 국내 서비스 결제에도 사용할 수 있다. 유니파이와 제휴된 국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을 예약하고 현장에서 진료비를 결제하면 이용액의 일정 비율을 JPYC로 돌려준다. 병원과 상품에 따라 최대 15% 상당의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 이 같은 JPYC 이용이 확산하는 데 불을 붙인 계기는 17일 업비트 상장이다. 그동안 JPYC를 구하려면 개인 지갑을 만든 뒤 유니스와프와 같은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다른 가상화폐와 교환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지갑 관리와 블록체인 네트워크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이용자에게는 접근하기 까다로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업비트가 거래 지원을 시작하면서 JPYC도 비트코인 같은 다른 가상화폐처럼 원화로 손쉽게 살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외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시장으로 파고드는 속도를 현행 규제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역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법 제정이 지연되면서 현재 JPYC는 일반 가상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받고 있다. 해외 발행사의 준비자산과 발행·상환 구조를 국내에서 어떻게 검증할지, 국내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소비자 보호 책임을 질지 등을 별도로 규정한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JPYC로 국내 모바일 상품권까지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자금세탁 방지 측면의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비트에서 JPYC를 매수할 때는 고객확인(KYC)과 자금세탁방지(AML)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거래소 밖 개인 지갑으로 출금된 뒤 다른 지갑으로 재전송되면 지갑 주소와 실제 보유자의 신원을 연결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JPYC는 또한 DEX에서도 취득할 수 있다. 중앙화 거래소와 달리 DEX는 고객확인을 수행할 운영 주체가 없어 이용자는 별도의 절차 없이 다른 가상화폐를 JPYC로 교환할 수 있다. 해외 불법 자금을 JPYC로 바꾼 뒤 개인 지갑을 거쳐 국내 모바일 상품권을 구매하면 기존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우회해 국내에서 현금화하는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리서치총괄도 “시장과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결합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장기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제도화 지연이 결과적으로 해외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만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 또한 나온다. 한국 투자자가 유동성을 공급하고 국내 소비처가 사용처를 제공하는 동안 이용자와 사업 기회는 해외 사업자가 선점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외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지급결제와 예치·송금망으로 확산하면 통화정책의 효과가 떨어지고 해외 자금 흐름을 포착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들의 유입을 막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앞당기고 유통 환경을 아우르는 기반을 마련해 국내 사업자도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