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5000억 달러(약 690조 1600억 원)를 돌파했던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대 명품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는 경기 둔화에 ‘궈차오(애국 소비)’까지 겹쳤고, 중동에서는 계속된 전쟁으로 소비와 관광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복된 가격 인상이 중산층 고객의 이탈로 이어지면서 외부 악재와 자체 가격 전략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증시에서 LVMH 주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412.30유로로 올해 초 641.80유로 대비 35.76% 하락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보복 소비에 힘입어 2023년 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넘어섰던 LVMH는 최근 유럽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에서도 밀려났다. 현 주가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3년 4월 21일 901.10유로와 비교하면 54.24% 떨어진 것으로, 3년여 만에 주가가 고점의 절반 아래로 주저앉았다.
LVMH의 부진에는 그동안 글로벌 명품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중국의 소비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와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 여력이 약해진 데다 최근에는 당국의 해외 자산 과세 강화까지 겹쳤다. 블룸버그가 시장조사업체 3곳의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올 7월 중국 내 25개 주요 명품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비롯해 구찌,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이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중국 소비자의 자국 브랜드 선호를 뜻하는 궈차오 확산도 서구 명품업체에는 부담이다. 최근에는 LVMH의 핵심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중국 현지 차 브랜드 ‘몰리티(Molly Tea)’의 상표권 분쟁이 현지 소비자들의 반발로 번졌다. 루이비통이 로고 도용을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중국 온라인에서는 현지 브랜드를 지지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시장조사업체 JL 워런 캐피털은 루이비통의 중국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올 7월 약 30%, 8월 20~25%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중동에서는 전쟁이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LVMH는 올해 1분기 중동 지역 사업이 전쟁의 영향을 받으면서 환율과 사업구조 변동 등을 제외한 매출 증가율이 약 1%포인트(p) 낮아졌다고 밝혔다. 2분기에도 중동 전쟁 영향을 제외하면 매출 증가율은 4%였지만 이를 포함하면 3%에 그쳤다.
최근 중동 사태가 국제유가와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고 있다는 점도 명품업계에는 부담이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상승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의류와 가방 등 경기 민감도가 높은 재량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금융 시장에서도 중동 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와 고금리가 소비를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LVMH 등 명품업계가 스스로 높인 가격 장벽도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가 폭발하자 명품업체들은 판매량 확대보다 가격 인상을 통해 매출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명품 산업 성장분의 80% 이상이 가격 인상에서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가격 인상이 누적되면서 명품을 처음 구매하거나 간헐적으로 소비하던 중산층 고객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가격대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결과 명품시장의 외형을 받쳐왔던 이른바 ‘열망적 소비자’가 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맥킨지는 명품 시장에서 가격 인상이 한계에 도달했고 높은 가격이 열망적 소비자의 수요를 압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수년간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약 6000만 명의 중산층 고객이 이탈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초고가 제품을 반복 구매하는 고액 자산가는 아니지만 가방과 의류, 소형 가죽 제품 등 제품들을 간헐적으로 구매하며 명품 시장의 저변을 넓혀온 소비자들이다. 베인은 반복된 가격 인상으로 이들에게 명품 브랜드의 가격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기 둔화에도 구매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최상위 고객층을 확보한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명품 시장 내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초고소득층 고객 비중이 높은 에르메스와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 역시 최근 6개월간 주가가 28% 올랐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화장품 등 스몰 럭셔리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로레알은 최근 LVMH를 밀어내고 프랑스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이달 15일 기준 로레알의 시가총액은 약 2030억 유로로 LVMH의 약 2010억 유로를 넘어섰다. 올해 로레알 주가가 약 5% 오른 것과 달리 LVMH는 35% 이상 하락하면서 두 회사의 시가총액 순위가 뒤바뀌었다.
시장에서는 이를 경기 불황기에 고가 상품 대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화장품 등에 소비가 몰리는 ‘립스틱 효과’로 해석했다. 닉 앤더슨 베렌버그 애널리스트는 “경기 전망이 악화할수록 소비자가 고가 핸드백이나 의류 대신 립스틱처럼 가격 부담이 작은 상품을 찾는 현상이 두 회사의 엇갈린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