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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만에 베네치아 품은 이창동 “영화로 계속 질문 던질 것”

13.09.2026 1분 읽기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2위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 경쟁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고(故)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2012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창동 감독 개인으로는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의 수상이다. 베네치아영화제는 지난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고(故)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와 인연을 맺어왔다.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델 치네마에서 열린 영화제 폐막식에서 ‘가능한 사랑’은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에 이어 두 번째 부문인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감독은 수상자로 호명되자 시상대에 올라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으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제작자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어 “이 영화에 생명력을 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분에게 감사드린다”며 “이 상은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 감독은 오랜 시간 이 영화의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제작을 놓지 않은 이유로 영화의 의미와 역할을 꼽았다. 그는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덧붙였다.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제작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부유한 남편(조인성)을 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 다른 계급적 배경에 놓인 인물들이 타인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관계, 존재의 의미를 질문한다. 이달 6일 현지 시사회 직후 정치·사회·윤리적 층위를 아우르는 정교한 연출로 외신의 극찬을 받으며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혀왔다. 이 작품은 본상에 앞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도 받았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은 “착취, 계급, 환멸, 사랑, 욕망, 그리고 이야기의 소유와 윤리를 탐구하는 미묘한 권력 게임들이 다층적이고 완벽한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창동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네치아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2010년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밀양’의 전도연에게는 200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번 수상으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감독의 영화는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실과 고통, 인간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색해왔다.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이 시대의 폭력에 짓눌린 인간을 바라봤다면, ‘오아시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인간다운 사랑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밀양’과 ‘시’에서는 신앙과 용서, 죄와 구원의 문제를, ‘버닝’에서는 청년의 불안과 계급의 격차를 파고들었다. ‘가능한 사랑’에서는 노동과 계급, 사랑의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묻는다.

이 감독의 이 같은 작품 세계는 베네치아영화제가 오랫동안 주목해온 작가주의 영화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과 영화적 미학을 중시하는 베네치아는 2002년 이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아시스’를 경쟁부문에 초청해 은사자상(감독상)을 안겼다. 소설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뒤 1997년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이 감독 특유의 문학적 색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순간이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이 감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신앙인과 비신앙인,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등 대칭적인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실과 고통을 이야기한다”며 “다른 리얼리즘 영화에서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지만, 이를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다방면으로 심오하게 그려낸다는 점이 차별화된다”고 평가했다.

올해 베네치아영화제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주요상을 휩쓸었다는 평가다.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에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를 배경으로 독일군 병사와 연인 관계였다는 과거를 숨긴 젊은 여성 마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연 배우 마틸데 아르셀은 여우주연상(볼피컵)까지 수상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감독상은 소련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와 스탈린 시대의 억압을 그린 ‘다우’의 일리야 흐르자노프스키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인공지능(AI) 활용 문제를 다룬 ‘나자’는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공식 상영 후 25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영화제 기간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각본상은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앙 봉 프티 솔다’, 남우주연상은 ‘와일드 호스 나인’의 존 말코비치가 수상했다. 촬영 일정으로 캐나다에 머문 존 말코비치는 영상으로 소감을 전했다. 신인여우상은 ‘어 플레이스 투 힐’의 말루 케비지에게 돌아갔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 후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내년 3월 열리는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 국제 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감독의 수상 소식이 알려진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감독님과 모든 배우·제작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앞으로도 한국 영화의 빛나는 여정을 응원하겠다”고 축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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