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를 피우면서 몸속에 니코틴이 많이 쌓일수록 노년기 시력 상실의 주범인 황반변성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중독성이 덜하고 덜 해로울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눈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고려대안암병원은 김동현 안과 교수 연구팀이 2016∼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 778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자담배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그룹에서 니코틴 노출 수준과 황반변성 발생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황반은 눈 안쪽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해 사물을 선명하게 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황반변성은 이 부위의 시세포가 빛과 색상을 감지할 수 없는 흉터 등의 조직으로 대체되어 시력이 감소하는 상태다. 황반변성이 생기면 글자나 직선이 휘어져 보이거나 굽어져 보이고 중심시력이 감소하게 된다. 망막의 노화 때문에 황반에 변성이 일어나는 나이 관련 황반변성이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며, 그중 황반 밑에서 비정상적인 혈관이 자라면서 삼출물과 혈액이 흘러나와 생기는 습성 황반변성은 발병 후 수개월 안에 실명에 이를 수 있다.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가운데 장기간 사용 시 눈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연령 관련 황반변성과 전자담배 사용의 관계를 살펴본 대규모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연구팀은 흡연력과 전자담배 사용 여부를 바탕으로 전체 피험자를 비흡연자, 과거 연초 흡연자, 전자담배 단독 사용자로 분류하고 각 그룹의 니코틴 노출 정도와 전신 염증 상태, 산화스트레스 수치 등 관련 생체지표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전자담배만 사용하는 사람은 비흡연자보다 니코틴 노출 수준이 뚜렷하게 높았다. 몸속 염증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인 고감도 C반응성단백질(hsCRP) 수치도 비흡연자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망막색소상피세포와 망막 조직 손상을 유발하는 산화스트레스 수치는 각 집단 간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소변에서 검출된 코티닌 농도가 높아질수록 황반변성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변 코티닌 농도를 세 구간으로 나눴을 때 황반변성 유병률은 농도가 가장 낮은 그룹에서 5.8%, 중간 그룹에서 7.8%, 가장 높은 그룹에서 8.4%로 증가했다. 코티닌은 니코틴이 몸속에서 분해되면서 생기는 물질로, 최근 니코틴에 얼마나 많이 노출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김 교수는 “연구를 통해 전자담배 단독 사용자에서 니코틴 노출 수준이 높아질수록 황반변성 발병 가능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전자담배가 눈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확인하려면 더욱 오랜 기간에 걸친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니코틴을 포함한 다양한 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건강 상태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 최근호에 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