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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TPP, 농업 내주고 디지털 산업 얻는 거래 아니다

11.09.2026 1분 읽기

통상의 이익은 보통 관세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관세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어떤 시장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 못지않게 누가 그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도 마찬가지다. 농산물을 얼마나 더 수입할 것인지에 논의가 머물면 농업의 수출 가능성도,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도 놓치기 쉽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내줄 것인가에 더해 무엇을 얻고 어떤 규칙을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농업부터 살펴보자. 올해 라면 수출은 7개월 만에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같은 기간 포도·배·딸기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최근 발표한 ‘K푸드+ 부스트(BOOST)’ 전략에는 전략 품목 육성, 신시장 개척과 비관세장벽 대응이 담겼다. 농업을 개방의 피해자로만 보는 구도는 이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지켜야 할 농업이 있는 만큼 세계로 나갈 농업도 있다. 한류가 소비자의 마음을 연다면 통상협정은 그 상품이 국경을 넘을 길을 넓혀야 한다. CPTPP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CPTPP 회원국을 국내시장을 위협하는 경쟁자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국 농식품이 진출할 소비 시장이기도 하다.

농식품 수출에서는 관세 못지않게 검역과 인증이 중요하다. 수입관세를 얼마나 더 낮춰야 하는지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 상품이 어떤 조건으로 더 많이 팔릴 수 있는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CPTPP의 위생·식물위생 규범은 과학적 근거, 투명성, 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불필요한 무역 장벽에 대응할 수단을 제공한다. 물론 가입만으로 수출 검역이 자동 타결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식품 안전을 포기하자는 뜻도 아니다. CPTPP는 이같이 해외에서 우리 농산물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농식품의 수출길을 따라가다 보면 디지털 경제와도 만나게 된다. 해외 플랫폼에서 우리 농식품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거래를 떠올려보자. 농산물은 물류망을 타고 거래는 데이터망을 탄다. 상품이 국경을 넘을 길을 열어도 주문과 결제를 잇는 데이터의 흐름에 불필요한 장벽이 남아 있다면 수출길은 반쪽만 넓어지는 셈이다. 디지털 규범은 정보기술(IT)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식품이 세계의 소비자를 만나는 조건이기도 하다.

CPTPP의 디지털 규범은 바로 이 수출길을 잇는 약속이다. 사업 활동을 위한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보장함으로써 각종 정보를 국경 너머로 연결할 기반을 제공한다. 전자적 전송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정보의 이동에 새로운 장벽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농식품을 파는 기업과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규칙이다. 상품의 판로와 데이터의 길이 함께 간다는 의미다.

디지털 경제의 성장과 주도권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기업에는 데이터가 이동하는 조건이, 콘텐츠 기업에는 디지털 상품이 차별받지 않을 조건이 사업의 기회를 좌우한다. 이런 조건을 남이 정한 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우리 기업의 강점을 반영해 함께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CPTPP 가입은 기존 규칙의 혜택을 누리는 데서 나아가 앞으로 그 규칙을 더 발전시키는 논의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우리는 농업과 디지털을 ‘보호해야 할 산업’과 ‘개방으로 이익을 얻을 산업’으로 갈라놓는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업은 양보할 과거가 아니고 디지털은 그 대가로 얻을 미래가 아니다. 둘 다 우리가 키워야 할 미래다. 농업에는 새로운 판로를, 디지털 산업에는 규범 형성의 발언권을 넓히면서 두 분야가 만나는 거래의 기반도 함께 다져야 한다.

서두르자는 말이 조건을 따지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라면이 많이 팔린다고 축산 농가의 손실이 상쇄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국가 전체 편익이라는 숫자로 특정 농가의 생계를 덮을 수는 없다. 가입 협상에서 얻을 권리와 부담할 의무를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민감 품목의 개방 조건과 피해 보전 대책을 함께 설계하는 정교한 통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검토만 반복하는 동안 다른 나라가 정한 규칙을 뒤늦게 받아들이는 비용도 반드시 계산해야 한다. 협상에는 타이밍이 있다. 선수의 몸값이 오를 때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듯 한국의 산업과 시장이 상대에게 매력적일 때 활용해야 한다. CPTPP는 농업을 내주고 디지털을 얻는 거래가 아니다. 농업의 가능성을 넓히고 디지털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선택이어야 한다. 우리 통상이 열어야 할 미래에는 논밭도, 데이터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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