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원을 내고 한 시간 남짓 우주를 다녀오는 여행에 700명 넘게 줄을 섰다.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캐나다 로키산맥의 1700만 원짜리 기차 여행도 1년 전에 매진된다. 고급차나 명품처럼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 자체에 높은 값을 매기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우주여행 기업 버진갤럭틱이 내년 상반기 진행할 우주여행은 가격이 75만 달러(약 10억원)이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약은 사실상 다 찼다. 마이클 콜글레이저 버진갤럭틱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대기자가 7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은 이륙에서 착륙까지 총 한 시간 남짓이다.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이륙한 버진갤럭틱 우주선은 고도 15㎞에서 모선과 분리된 뒤 로켓을 점화해 고도 86㎞까지 올라간다. 승객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캐빈을 떠다니며 창 너머 검은 우주와 빛나는 지구를 감상한다.
회사는 시장의 초기로 본다. 버진 갤럭틱은 전 세계에서 우주를 체험할 의지와 자산을 갖춘 사람을 약 30만 명으로 추산하며, 이 수가 매년 8%씩 늘 것으로 전망한다.
경험 수요의 증가로 가장 크게 변화하는 곳은 여행업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2026년 세계 여행 트렌드 보고서에서 여행객들이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현지 문화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남들과 다른 고급 여행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럭셔리 여행 네트워크 ‘버츄오소’의 캐나다 로키산맥 기차 여행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에서 12일을 보내는 일정이다. 최고 1만7600캐나다달러(약 1729만 원)에 달하지만 1년 전에 매진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풍경과 경험에 몰입하는 시간 자체를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 여행사 블랙토마토의 ‘블링크’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나 아이슬란드 얼음 계곡 등 고객이 원하는 곳에 임시 숙소를 만들고 개인 셰프와 각종 체험을 제공한다. 가격은 1인당 1만~10만 달러(약 1350만~1억3500만 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하나투어가 ‘제우스 월드’를 통해 스페인에서 슈퍼카를 운전하는 상품을, 노랑풍선이 튀르키예 파묵칼레 석회붕을 보며 식사하는 체험형 상품을 내놓았다. 롯데호텔 제주는 지난 5월 판초 우의와 러닝 용품을 넣은 ‘빗속 달리기 패키지’를 출시했다.
체험을 넘어 그 기억을 붙잡는 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향이다. 교보문고의 ‘더 센트 오브 페이지’는 책장을 넘길 때의 종이 감성과 서점의 분위기를 향으로 구현해 디퓨저와 사셰, 핸드크림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다. 더 플라자 호텔의 시그니처 디퓨저 판매량도 지난해 20% 늘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향수 시장은 1조1800억 원으로 2021년보다 68.3%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향은 오감 가운데 특정 공간의 경험을 되살리는 대표적 감각”이라며 “호텔이나 매장에서 누렸던 경험을 일상에서 다시 느끼려는 소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