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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부터 연구진까지 싹쓸이”…대기업 ‘꼼수 인수’ 들여다본다

10.09.2026 1분 읽기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들이지 않고 핵심 인력만 데려간다면 어떨까. 지금까지는 단순한 ‘인재 스카우트’에 가까웠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산업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다. 핵심 연구자 몇 명이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 역량과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으로 이런 ‘인재 영입형’ 거래를 기업결합 심사 대상으로 볼 수 있는 기준을 ‘기업결합의 신고요령’ 개정안에 명확히 담기로 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을 조직적으로 데려가고 기술까지 확보해 기존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면,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니라 사실상 ‘사업 인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직원 몇 명을 채용하거나 경쟁사 인재를 통상적으로 스카우트하는 것까지 기업결합으로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거래를 가리켜 ‘애크하이어(acqui-hire·인수와 채용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대신 필요한 사람을 데려오는 방식이다. 특히 AI 스타트업은 공장이나 장비보다 사람과 기술이 사업의 핵심인 경우가 많다. 창업자와 핵심 연구진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회사가 쌓아온 기술과 사업 기반이 사실상 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인력을 데려간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이 가진 기술과 경험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기존 스타트업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확보한다면 회사 이름과 법인은 그대로 남아 있어도 실제로는 기존 사업의 핵심이 다른 회사로 옮겨갈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업계에서는 이런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플렉션AI다. MS는 2024년 인플렉션AI를 통째로 인수하지 않았다. 대신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과 카렌 시모냔을 비롯해 핵심 인력 대부분을 영입하고, 인플렉션AI의 AI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 계약도 맺었다. 거래 규모는 약 6억 5000만 달러로 알려졌다.

회사를 직접 인수하지 않았지만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MS의 직원 영입과 관련 계약을 기업결합 사건으로 들여다봤다. 인플렉션AI의 직원과 기술 등이 MS로 넘어가면서 하나의 사업이 이전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따져본 것이다. CMA는 최종적으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거래를 승인했다.

구글과 캐릭터AI의 거래도 비슷했다. 구글은 2024년 캐릭터AI의 공동창업자 노암 셰지어와 대니얼 드 프레이타스를 영입하고 일부 직원도 채용했다. 동시에 캐릭터AI의 AI 모델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구글이 공시한 거래 대가는 27억 달러에 달했다.

구글 역시 캐릭터AI라는 회사를 통째로 사들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업자와 핵심 인력, 기술을 한꺼번에 확보하면서 기존 M&A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 역량을 가져온 사례다.

메타와 데이터 라벨링 업체 스케일AI의 거래는 또 다른 형태다. 메타는 지난해 스케일AI 지분 49%를 약 143억 달러에 사들이는 동시에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알렉산더 왕을 자사 AI 조직으로 영입했다. 회사 경영권을 통째로 가져온 전통적인 인수와는 달리 대규모 투자와 핵심 인력 영입이 함께 이뤄졌다.

공정위가 주목한 점도 이런 식으로 회사 지분을 직접 사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사업을 가져가는 거래다. 핵심 인력이 조직적으로 이동하면서 인수하는 쪽이 기존 회사가 하던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면 ‘영업의 주요 부분’을 넘겨받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을 넘겨받는 거래 대가도 인력 이동에 대한 보상이나 권리 포기에 지급한 돈, 지식재산권 사용료 등으로 범위를 넓혀 폭넓게 살피기로 했다. 또 거래 과정에서 기존 회사가 하던 사업을 접는 등 실제로 사업이 넘어간 효과가 나타났다면 이를 ‘거래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공정위가 이런 기준을 마련한 배경에는 AI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사람과 기술이 곧 사업인 거래가 늘고 있다는 판단이 있다. 기존 기업결합 제도는 주식 취득이나 합병, 영업양수처럼 회사나 사업을 직접 넘겨받는 거래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핵심 인력과 기술만 확보해도 사실상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거래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진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으로 기업결합 신고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거래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성장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공격적인 기업결합 전략으로 경쟁력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결합 심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주병기 공정위원장도 대기업의 공격적인 기업결합 전략으로부터 벤처기업을 보호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주 위원장은 “K-엔비디아 회사들이 반도체 대기업에 인수될 수 있고, 제약 벤처도 기존 제약회사들에 의해 충분히 인수될 수 있다”며 “우리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공격적·적대적 기업결합 전략에 희생되지 않게끔 기업결합 심사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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