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일
논설위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돈 쓰는 방식을 네 가지로 나눴다. 내 돈을 나를 위해 쓰면 가격과 만족도를 모두 따진다. 하지만 내 돈을 남에게 쓰면 가격에 민감하지만 상대의 만족도는 덜 살핀다. 반대로 남의 돈을 나를 위해 쓰면 가격에 둔감하고 만족도는 꼼꼼히 챙긴다. 마지막으로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쓰면 가격과 만족도 모두 세심하게 따지지 않는다. 프리드먼은 정부 지출을 네 번째 경우에 빗대었다. 국민의 혈세를 쓸 때는 비용 대비 효과를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다.
우리나라 살림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0조 9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인 ‘슈퍼 예산’이다. 여기에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날 세수 162조 3000억 원을 재원으로 하는 미래대응기금까지 새로 등장했다. 물론 기금 전액을 내년에 다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주무를 수 있는 재정 외연은 983조 원대로 커졌다. ‘1000조 곳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우리 정부 예산은 복지비 증가 등으로 지난 10년간 두 배가량 몸집을 빠르게 불렸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일본 정부의 예산은 10년 전 우리의 2.7배였지만 내년에는 1.7배로 좁혀질 정도다.
세수가 줄어들 때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못지않게 세금이 잘 걷힐 때 지갑을 함부로 열지 않는 것도 재정 운용의 기본이다.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세수에 취해 지출을 과도하게 늘렸다가는 반도체 경기가 꺾이는 순간 ‘호황의 청구서’를 받아들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미래대응기금은 더욱 엄격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청년, 성장 동력, 지방, 교육 등에 투자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래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정부의 재량이 훨씬 크다. 주요 지출 항목의 최대 30%까지 국회 의결 없이 변경할 수 있어 자칫 ‘정부의 쌈짓돈’으로 변질될 우려가 적지 않다. 더욱이 기금 운용 기간이 5년 안팎으로 설정돼 있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재원이 소진되면 해당 사업들이 일반회계로 넘어가 결국에는 재정을 압박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산의 간판보다 돈의 행선지다. 단지 ‘청년’ ‘지방’ ‘교육’이라는 표찰을 붙인다고 해서 모든 사업이 미래 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심성 현금 지원이나 무상 복지까지 미래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 시작하면 기금 본래의 취지는 금세 퇴색하고 만다. 호황기에 한 번 늘어난 지출은 불황이 찾아온다고 해서 저절로 줄어들지 않는다. 재정의 경직성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쌓여가는 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벌써 경고등이 켜졌다. 경기도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내년도 시군 보조 사업의 도비 지원율을 기존 40~50%에서 최대 30%로 제한하기로 했다. 지원금이 깎이게 된 일선 시군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씀씀이를 늘리는데 지방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기묘한 ‘풍요와 궁핍의 동거’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나라의 대차대조표를 보더라도 무턱대고 지갑을 활짝 열 형편이 아니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국가채무는 2030년 1734조 원까지 불어난다. 여기에 정부 보증채무(157조 3000억 원)와 공공기관 부채(997조 4000억 원)를 합친 잠재적 재정 부담만 115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국가채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더라도 언젠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그림자 계산서’가 수두룩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을 경제성장의 ‘씨앗’에 비유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등 미래 먹거리는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옥토에 뿌린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지만 돌밭에 뿌린 씨앗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 곳간이 커졌다는 것은 재정의 힘만큼이나 책임도 무거워졌음을 의미한다. 재정의 성적표는 단순히 임기 중에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느냐가 아니다. 성장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빚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했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 어떠한 자산과 부담을 넘겨줬는지가 중요하다. 프리드먼의 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