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으로 유명한 경기 이천시의 랜드마크 호텔로 자리 잡은 ‘이천미란다호텔’, 골퍼들 사이에서 수도권과 중부권의 명문 코스로 통하는 ‘양평TPC’와 ‘플라밍고CC’.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관광·레저 인프라지만 이 공간들이 하나의 그룹 아래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라미드그룹이다.
라미드그룹은 창업주 문병욱 회장이 1980년대 시작한 대중목욕탕 사업을 발판 삼아 다수의 호텔과 144홀 규모의 골프장을 거느린 관광·레저 그룹으로 성장했다. 자산 규모와 존재감에 비해 ‘기업의 얼굴’은 대중에게 덜 알려진 편이다. 창립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밖으로 나서기보다 안으로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해온 결과다. 조용히 사세를 확장한 라미드그룹이 최근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관광·레저 자산을 하나로 꿰는 통합 브랜딩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호텔과 골프장에 밝고 경쾌한 감각과 ‘웰니스’라는 시대적 가치를 덧입히는 작업도 한창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문유선 라미드그룹 대표가 있다. 문 회장의 장녀인 문 대표는 20여 년간 그룹의 공간 디자인과 마케팅·상품 기획 등의 실무를 총괄해왔고 2013년 이천미란다호텔을 시작으로 라마다서울·라마다송도 등 호텔 계열사 전반도 이끌고 있다. 9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문 대표는 “라미드그룹에는 사람들이 휴식하는 호텔과 건강하게 여가를 즐기는 골프장이라는 탄탄한 하드웨어가 있다”며 “그 위에 웰니스라는 새로운 성장 축을 더해 앞으로 10년에 걸쳐 그룹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창립 이래 가장 과감한 포트폴리오 개편
문 대표가 밝힌 ‘새로운 10년의 정체성’은 전국 현장에서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한창 자산을 많이 인수하며 그룹이 확장하던 20~30여 년 전 자산 대부분이 한 차례 리뉴얼을 단행했지만 어느덧 그 장소들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며 “특히 호텔 인프라는 한번쯤 전반적으로 리뉴얼을 해야 할 시기라고 판단해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밑그림을 새로 그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창립 이래 가장 과감한 포트폴리오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땜질식 부분 수선 대신 ‘전면 철거 후 완전 신축’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서울 삼성동 핵심 입지인 라마다서울이 지상 구조물을 철거한 후 복합 랜드마크 개발을 준비 중이며 이천미란다호텔도 2024년 영업 종료 후 전면 철거에 돌입했다. 문 대표는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리긴 했지만 라마다송도호텔도 순차적으로 리뉴얼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새롭게 탄생할 공간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웰니스다. 온천수를 활용한 대형 워터파크 ‘스파플러스’로 유명세를 탄 이천미란다호텔은 600년 온천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치유·수면 중심의 웰니스 리조트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총사업비 1500억 원을 투입해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일원에 조성할 계획인 골드힐카운티 리조트 역시 골프와 호텔, 자연과 치유가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체류형 웰니스 거점’을 목표로 조성된다. 리조트의 중심 축인 천안골드힐CC가 공사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정식 개장을 앞둔 가운데 5성급 프리미엄 호텔 건립도 본궤도에 올랐다.
문 대표는 별도의 웰니스 사업부 신설 계획도 밝혔다. 그는 “단순히 기존 호텔에 스파 시설이나 건강 프로그램 몇 가지를 추가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온천·수면·식음·운동·명상·휴식과 회복 등 건강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웰니스 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웰니스 사업부 신설…연내 통합 브랜드 공개
웰니스라는 승부수는 문 대표가 20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의 산물이다. 2004년 라마다서울 구매팀 주임으로 호텔 비즈니스에 몸담은 문 대표는 미술디자인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양평TPC 클럽하우스의 아트워크와 마감재 세팅 등 업무를 맡았다. 이후 호텔·골프장의 인테리어부터 리뉴얼, 상품 기획 관련 전반의 업무를 경험하며 현장을 익혔다. 라마다서울·송도와 이천미란다 등 인수된 호텔 자산의 새 단장도 도맡아 공간의 결을 다듬고 디테일을 채워 넣었다.
문 대표는 “라마다서울·송도에서는 글로벌 호텔 브랜드 유치부터 웨딩사업 론칭까지 하나하나 완성해갔다”며 “이런 경험들을 통해 호텔이라는 곳이 단순히 잠을 자고 휴식하는 공간을 넘어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는 장소로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츰 선명해졌다”고 떠올렸다. 그는 지금도 수시로 현장을 찾아 직접 숙박하고 먹어보며 동선을 점검한다. 문 대표는 “객실 침대에 직접 누워봐야 조명과 침구의 안락함을 알 수 있고 샤워기 물을 틀어봐야 수압의 문제가 보인다”며 “호텔업의 본질은 결국 ‘환대’와 ‘머무는 경험’이기에 고객의 시간 전체를 가치 있게 채우는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룹의 통합 브랜드 기획도 환대의 경험을 고객에게 어떻게 각인시킬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올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막바지 작업 중이라는 통합 브랜드는 그동안 각각 운영돼온 그룹의 골프·호텔·온천 자산을 하나의 철학 아래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문 대표는 “개별 골프장과 호텔이 각각 매력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고객에게는 하나의 경험으로 기억돼야 한다”며 “기분 좋게 골프를 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온천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하고 다음날 더 좋은 컨디션으로 돌아가는 활동 모두가 완벽한 ‘머무는 경험’이 되려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관광레저 선도 기업으로 도약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배경으로 그룹이 반세기 동안 축적해온 자산 체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룹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호텔·골프장 등은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문 창업주의 안목과 과감한 투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외환위기 전후 수도권 알짜 부동산을 적극 사들이며 사세를 키운 그룹은 최근 3년간 보폭을 다시 넓혔다. 2023년 충남 당진 플라밍고CC(36홀)를 안착시켰고, 2024년 충북 보은 속리산CC(18홀)를 900억 원에 인수했다. 천안골드힐CC까지 가세하면 전국 144홀 규모의 대형 골프 네트워크를 완성하게 된다.
문 대표는 “당장의 손익을 넘어 5년, 10년 뒤 사업과 자산이 어떤 가치를 가질지를 알아보는 안목과 결단력은 부친을 따라갈 수 없다”며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결정을 한참 지난 후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경영자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워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그룹이 세운 단단한 뼈대 위에 새로운 감각을 더하고 확장과 변주를 꾀하는 역할이 자신의 몫이라고도 설명했다. 특히 여성적 감각을 통해 그룹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넣는 일에 관심이 많다. 남양주CC나 플라밍고CC 등에서 문화 콘서트를 열거나 핑크리본 캠페인 연계 자선 골프단을 운영하며 여성 골퍼와 가족 고객의 문턱을 낮춘 것도 그가 일으킨 변화다. 문 대표는 “아버지가 사업의 큰 방향과 투자 본질을 보신다면 저는 그 공간을 실제로 채우는 콘텐츠와 고객 경험 등을 세밀하게 살피는 편”이라고 말했다.
창업주가 일군 탄탄한 기초 자산 위에 문 대표의 섬세한 기획력이 얹어지면서 그룹의 체질 전환도 본격적인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반기 통합 브랜드 공개를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 천안골드힐CC 개장, 하반기 이천미란다호텔 재개관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 대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상상해도 좋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창업 당시부터 추구해온 목표는 ‘관광레저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며 “일상의 쉼과 회복을 선물하는 공간을 선보이는 동시에 창업주의 철학을 체감할 수 있는 브랜드를 완성해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he is… △1979년 서울 △2003년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미술대학 졸업 △2004년 라미드그룹 입사 △2013년~ 이천미란다호텔 대표 △2017년~ 라마다서울·송도 대표 △2022년~ 라미드그룹 대표이사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