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은 맛있지만 짜다. 국물을 비울 때마다 혈압계 숫자가 쌓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숟가락을 내려놓기 쉽지 않다.
5일 대한고혈압학회가 발표한 고혈압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국내 20세 이상 성인 중 약 1300만명이 고혈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병률은 30.1%로 성인 10명 중 3명꼴이다. 남성 720만명, 여성 580만명이며 65세 이상 고령층도 580만명에 달한다.
고혈압 유병자 중 인지율은 77%, 치료율은 74%지만 목표 혈압에 도달한 조절률은 59%에 그쳐 치료를 받고 있어도 절반 가까이는 혈압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나트륨 과다 섭취가 고혈압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5년(2019~2023년)간 실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136mg으로 WHO 권고 기준(2000mg)의 1.6배에 달했다. 저감 정책 시행 이전인 2011년 4789mg과 비교하면 34.5% 줄었지만 여전히 기준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남성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696mg으로 여성(2576mg)보다 1.4배가량 많았고, 30~40대가 가장 많이 섭취하는 연령대였다.
국물 문화가 나트륨 과잉의 주범이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섭취하는 나트륨의 50% 이상을 면·만두류, 김치류, 국·탕류, 볶음류, 찌개·전골류를 통해 섭취하고 있다. 하루 기준으로 면(라면 등)·만두류 481mg, 김치류 438mg, 국·탕류 330mg, 볶음류 227mg, 찌개·전골류 217mg 순이었다.
컵라면 한 용기의 나트륨 함량은 평균 1700~1800mg으로 국물까지 비우면 한 끼에 WHO 하루 권고량을 넘기는 구조다. 짬뽕은 조리 방식에 따라 4000mg에 이를 수 있다. 음식점에서의 한 끼 나트륨 섭취량은 1522mg으로 가정식(1031mg)보다 높았다.
나트륨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국물을 남기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단을 한 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국물 절반 남기기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국물을 절반만 남겨도 수백mg의 나트륨을 줄일 수 있다.
면을 따로 삶아 옮겨 담거나 국물에 밥을 말지 않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국물을 마실 때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쓰면 자연스럽게 섭취량이 줄어든다. 외식 시에는 국물 요리 대신 구이 위주로 선택하고, 소스는 찍어 먹는 방식으로 바꾸면 나트륨 섭취를 낮출 수 있다.
나트륨을 과다 섭취하면 체내 혈액량이 늘어나 혈관 벽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지고 고혈압으로 이어진다. 고혈압이 지속되면 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이 커지고 신장이 과부하를 받아 만성신장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짠맛에 익숙해진 미각은 2~4주 정도 저염식을 유지하면 서서히 되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 라면 국물을 절반 남기는 작은 선택이 혈압 관리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