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조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두 기관으로 나누는 방안이 추진되지만 자산·부채 배분과 공공임대 손실 보전 방안은 후속 과제로 남았다. 주택 공급과 주거 복지 기능을 분리해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구체적인 재무 설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부채를 두 기관에 나눠 담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개 항만공사 통합 역시 본사 소재지와 지역별 권한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
정부가 3일 LH를 17년 만에 둘로 쪼개기로 한 것은 공공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2030년까지 공공 주도로 158만 가구의 주택 공급을 추진하려면 LH의 역할이 중요한데 개발과 주거 복지를 한 기관이 함께 수행하면서 주택 공급이 늦어지고 임대주택 운영 부담도 커졌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임대주택 사업의 재무 부담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통합공공임대 기준 1가구당 실사업비는 2016년 1억 1000만 원에서 지난해 3억 6500만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지원단가는 1억 200만 원에서 2억 1100만 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실제 사업비와 정부지원단가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LH가 떠안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LH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부채는 173조 6567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 5512억 원 늘었다. 부채비율도 217.7%에서 230.8%로 13.1%포인트 상승했다. 정부의 중장기재무관리계획상 LH 부채는 올해 197조 5000억 원에서 2030년 372조 8000억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는 이 같은 부채 증가세를 관리할 구체적인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분리 과정에서 개발공사가 부채를 많이 떠안으면 주택 건설에 투입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임대주택과 관련 부채가 자산공사에 집중되면 수익 기반이 취약한 자산공사의 정부 재정과 주택도시기금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구조적인 운영 적자도 해결해야 한다. LH는 그동안 임대 사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택지 매각과 개발 사업의 이익으로 메워왔다. 정부는 분리 이후에도 개발공사의 이익 일부를 주택도시기금을 거쳐 자산공사에 출연하도록 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출연 규모와 손실 보전 방식은 제시하지 않았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으로 가정하면 회사를 일종의 굿컴퍼니와 배드컴퍼니로 나눈 셈인데 배드컴퍼니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제시되지 않아 반쪽 개혁안”이라고 지적했다.
개발공사가 자산공사를 지원할 만큼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면 투자금을 비교적 빨리 회수할 수 있지만 LH가 직접 주택을 건설하면 보상비와 건설비를 먼저 투입한 뒤 분양·임대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사업비를 회수해야 한다. 직접 건설이 확대될수록 개발공사는 주택 공급에 필요한 선투자와 주거 복지 재원 마련이라는 두 부담을 동시에 떠안을 수 있다.
LH 조직을 나누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2021년 LH 직원 투기 사태 이후 개발과 주거 복지 기능의 분리를 검토했지만 자산·부채 배분과 개발이익의 교차 보전, 기관 간 업무 연계와 주택 공급 차질 가능성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실행하지 못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주택 건설과 주거 복지 기능을 분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관까지 나눠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며 “기관을 분리했을 때 어떤 실익이 있는지 불분명한 만큼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지, 통합 당시의 목적은 더 이상 달성하기 어려운 것인지 따져본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LH가 하나의 기관에서 두 기관으로 분리되는 것과 달리 항만 분야에서는 4개 기관이 하나로 합쳐진다. 정부는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를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고 기존 공사를 지역지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통합공사의 본사 소재지와 항만별 투자·인력 배분 원칙은 이번 개편안에 담기지 않았다.
통합 논의가 알려진 뒤 지역사회의 반발도 이어졌다.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를 비롯한 부산 지역 6개 단체는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정부에 항만공사 통합 계획의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결정으로 대한민국 항만의 국제 경쟁력과 지역의 경제적 자율성,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정책적 오류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예산·투자 권한이 통합본사에 집중될 경우 본사 유치와 지역지사의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항만공사 외에도 공공기관 재편안이 대거 제시됐다. 정부는 현재 12개인 국립 전시·관람기관을 문화·과학·해양·국토·농림 등 부처 단위로 각각 통합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번 공공기관 통폐합의 목표로 효율성 제고를 내세웠지만 정원 감축과 비용 절감 등 기대효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통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은 결국 인력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며 “과거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공공기관 인력을 늘려놓고 다시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