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5년 차 스타트업이 인공지능(AI)을 전면 활용한 원자력 발전소 정비 작업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서 수행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원전에 AI 정비 기술 용역을 수출한 첫 사례다. 원전 업계에서는 바라카 원전 사업을 시작으로 한국 원전 기업들의 AI 기술 수출 도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원전 비파괴검사 스타트업 딥아이는 최근 바라카 원전 1~4호기의 복수기와 고압급수가열기를 AI로 비파괴검사하는 작업을 마쳤다. 복수기는 터빈을 돌리고 난 증기를 다시 물로 바꾸는 설비이고, 고압급수가열기는 복수기에서 넘어온 물을 증기발생기로 보내기 전 열과 압력을 가하는 장치다. 두 설비에는 각각 수천 개의 전열관이 들어 있다. 이 전열관에 와전류(맴돌이 전류)를 흘려 신호를 분석해 결함을 찾아내는 것이 비파괴검사다.
2022년 설립된 딥아이는 자체 개발한 AI 비파괴검사 솔루션 ‘딥에이전트’로 검사 업무를 자동화했다. AI가 검사 장비로 수집한 신호를 전수 분석해 이상 신호 구간을 자동 선별하면, 작업자는 AI가 제시한 결함 후보와 판독 근거를 검토해 설비 이상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방식이다.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에너지도 딥아이의 검사 결과에 만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용역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딥아이는 올해 4분기 중 2차 AI 비파괴 검사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 UAE로 향한다.
딥아이는 바라카 원전 계획예방정비 주사업자인 수산인더스트리의 협력사로 이번 사업에 참여했다. 한국 기업들은 사업 입찰 과정에서부터 AI를 활용한 선도 기술 역량을 UAE 측에 강조했고, 그 결과 그동안 크로아티아·프랑스 기업이 맡아온 계획예방정비 용역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사례를 시작으로 국내 원전 기업들의 AI 도입과 현장 실증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원전 정비는 그간 AI 도입이 더딘 분야로 꼽혀왔다. 사고 위험이 큰 작업인 만큼 숙련공의 경험과 노하우에 최종 판단을 맡기려는 관행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성능이 빠르게 발전하는 데다 사람에게만 의존할 때 발생하는 시간·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업계 내 수요가 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재 원전 시장에서는 AI 기술 확보에 몰두하는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는 중이다.
방사성 폐기물 해체 전문 업체 다온기술은 금속폐기물의 오염 정보를 분석해 최적의 제염 방법을 제시하는 AI를 연내 개발한다. ‘다온 D-ACS’라고 이름 붙인 이 AI는 복합제염장치에 심어진다. 폐기물의 상태에 따라 효율적인 오염 제거 방법을 계산하고 제염 장치 안에서 제염 작업까지 수행하는 AI를 구축하는 게 회사의 목표다. 한전KPS(051600) 와 스타트업 엠유트론은 용접 로봇용 AI 모델을 함께 학습시키는 중이다. 양사는 원자로 하부 관통관(BMI)에서 스스로 용접하는 로봇용 AI 모델을 내년 상반기 중 공개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원전 정비용 AI를 앞세워 ‘팀코리아’가 해외 사업을 따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는 “이제까지 미국의 지텍 등 해외 기업들이 원전 정비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붙잡고 있었지만 원전 관련 AI는 아직 뚜렷한 선두 기업이 없다”며 “전문성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AI라면 충분히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