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을 앞둔 직장인이 인공지능(AI)에 “월세 예산에 맞으면서 회사까지 30분 안에 갈 수 있는 집을 찾아줘”라고 말한다. AI는 직방의 매물 정보를 바탕으로 조건에 맞는 집을 추천하고 관리비와 교통편까지 비교해준다. 집을 계약한 뒤에는 이전 대화를 기억해 “전입신고와 주소 변경은 하셨나요?”라고 먼저 묻는다. 전입신고와 우편물 주소 변경, 공과금 이전 등 이사 뒤 필요한 행정 절차도 이어서 처리해준다. KT가 ‘모두의 AI’에서 구현하겠다고 제시한 일상의 모습이다.
이처럼 AI가 일상 속 업무를 직접 챙기고 처리하는 ‘모두의 AI’ 서비스가 이르면 9월부터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와 SK텔레콤, 카카오 등 3개 컨소시엄을 ‘전 국민 AI 서비스 보편적 활용 지원(모두의 AI)’ 사업 수행자로 선정했다. 각 컨소시엄은 주거와 의료, 교육, 취업, 공공서비스 등 국민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영역에 AI를 적용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카카오 컨소시엄은 9월 베타 서비스를 공개하고 SKT는 10월 베타 서비스를 선보인 뒤 연내 정식 서비스 출시에 나설 계획이다.
모두의 AI는 챗GPT처럼 이용자가 질문하면 답을 내놓는 범용 챗봇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공·의료·금융·교육·주거 등 실제 생활 서비스를 연결해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를 지향한다. 여러 앱과 웹사이트를 사람이 직접 찾아다니며 정보를 검색하고 일을 처리하는 대신 AI에 필요한 것을 말하면 관련 서비스를 찾아 다음 단계까지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SKT, 관공서부터 건강·취업까지 ‘생활 AI 비서’
SK텔레콤은 관공서 업무부터 건강관리, 취업까지 챙기는 ‘생활 AI 비서’를 내세웠다. 정부24와 PASS를 연계해 주민등록표등본 등 각종 증명서 83종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은 이용자에게는 ‘건강관리 비서’ 역할을 한다. 흩어져 있는 검진 결과와 진료·처방 이력을 한곳에 모아 쉬운 말로 설명하고 다시 검사가 필요한 항목도 챙겨준다. 증상을 말하면 가까운 병원을 안내하고 진료 예약까지 연결하는 기능도 준비하고 있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취업 비서’가 된다. 이용자가 최근 채용공고를 물으면 새로운 공고와 함께 관련 청년정책을 안내한다. 관심 있는 채용공고를 등록해두면 서류 마감 일정을 챙겨주고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준비까지 돕는다.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는 매출과 비용, 세금 현황을 정리하고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사업을 찾아 신청 자격과 일정을 알려주는 ‘가게 운영 컨설턴트’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KT, 아이부터 소상공인까지 ‘개인 맞춤형 AI’
KT는 주거·교육·금융·쇼핑 등 서로 다른 생활 서비스를 하나의 AI로 연결하는 ‘개인 맞춤형 AI’에 초점을 맞췄다. 이용자의 동의를 받아 관심사와 일정, 진행 중인 일을 기억하고 다음에 필요한 일을 먼저 제안하는 방식이다. 아이가 과학 수업에서 달과 지구의 움직임을 어려워하면 나이와 학습 수준에 맞춰 개념을 설명하고 EBS와 콴다의 관련 콘텐츠를 추천한다. 필요하면 달과 지구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3차원 시각자료까지 만들어준다.
소상공인에게는 경영 도우미가 된다. “최근 매출이 줄었는데 원인을 분석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을 찾아줘”라고 물으면 시장·소비 정보를 바탕으로 참고할 만한 원인과 개선 방향을 정리해준다. 이어 이용할 수 있는 지원정책과 신청 자격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와 절차까지 안내한다. 이사를 앞둔 이용자에게 집을 찾아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계약 이후 전입신고와 주소 변경 등 다음에 해야 할 일까지 먼저 제안하는 것도 KT가 내세운 개인화 AI의 모습이다.
카카오, ‘국민 메신저’ 카톡으로 더 간편한 AI 사용
카카오 컨소시엄은 국민에게 익숙한 카카오톡을 AI의 주요 접점으로 삼는다. 별도의 AI 서비스를 찾아갈 필요 없이 카카오톡에서 범용 AI 챗봇을 이용하다 필요한 경우 공공 AI 에이전트와 의료·금융·세무·교육·고용·돌봄 등 분야별 전문 AI 에이전트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카카오의 ‘카나나(Kanana)’와 LG AI연구원의 ‘K-엑사원(K-EXAONE)’ 등 자체 개발 AI 모델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한다.
AI를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사용법을 배울 필요도 없을 전망이다. 카카오·LG유플러스 컨소시엄은 앱 설치나 별도 가입 없이 전화 한 통으로 AI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다. SKT 역시 스마트폰 앱뿐 아니라 전화와 문자로 AI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KT는 별도의 ‘모두의 AI’ 앱과 웹을 구축하면서 다음과 지니TV,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의 기존 서비스에도 AI 기능을 적용한다. 고령층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평소 이용하던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등을 통해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 이용 격차 줄이고 국산 AI에는 ‘실전 무대’
정부가 ‘모두의 AI’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AI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이용 능력과 비용에 따른 새로운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모두의 AI’는 국민 누구나 비용 부담과 이용 제약 없이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특히 고령층과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도 AI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SK텔레콤이 전화·문자를, 카카오·LG유플러스가 카카오톡과 전화를, KT가 오프라인 유통망과 IT서포터즈까지 활용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산 AI 산업에 실제 사용처를 만들어주려는 목적도 있다. KT 컨소시엄은 KT의 ‘믿음’을 비롯해 업스테이지의 ‘Solar’, 모티프테크놀로지스의 ‘Motif’, 솔트룩스의 ‘LUXIA’, NC AI의 ‘VARCO’ 등 복수의 국산 AI 모델을 활용한다. 리벨리온의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와 래블업·베슬AI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운영 최적화 기술 등 국내 AI 인프라 기술도 서비스에 투입한다.
SK텔레콤은 자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A.X K2’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내 AI 모델을 활용해 서비스를 구축한다. 카카오 컨소시엄은 카카오의 ‘카나나’와 LG AI연구원의 ‘K-엑사원’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한다. 하나의 AI 모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산 AI 모델과 관련 기술을 실제 국민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국민이 실제 사용하는 대규모 서비스를 국산 AI 모델과 기술이 성능과 활용성을 검증받는 ‘실전 무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