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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서 10km 러닝, 백화점서 방탈출…경험경제, 소비공식 바꾼다

28.08.2026 1분 읽기

22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액세서리 부자재 전문 상가가 모여 있는 5층에 입장하려는 소비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 요원까지 세 명이나 있었다. 백화점 해외 명품 매장 앞에서나 보던 입장객 관리가 이뤄지는 이곳은 Z세대 사이에서 키보드 키링부터 스마트폰 케이스, 젤리 슈즈, 목걸이·팔찌 등 각종 ‘꾸미기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입장한 5층 매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부터 친구들과 온 20대 여성, 연인, 외국인 관광객까지. 이곳은 저물어가는 전통 시장이 아닌 서울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쇼핑 성지의 모습이었다. D가게의 점원은 “주말이면 항상 이 정도 손님이 온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곳의 인기는 싸게, 그리고 직접 만든다는 데 있다. B동의 한 매장에서는 LED 4구 키보드 키링 베이스가 3000원, 키캡(뚜껑)을 200~400원에 팔고 있었다. 시중 서점에 2만 원가량인 키링을 5000원이면 만든다. 이날 한 연인은 한참을 고르고 조립하더니 10만2000원어치를 결제했다.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만지고 골라보는 것은 제한하지 않는다. 한 점주는 “만들어보다 가는 손님도 있지만 그런 즐거움을 위해 오는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

‘구매 과정 자체가 경제적 가치’…경험경제, 글로벌 메가 트렌드로

동대문종합시장의 인기는 경험소비가 확산하면서 나타난 변화의 한 단면이다.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동대문종합시장과 완구거리, 신발상가가 있는 창신1동의 일일 기준 낮 시간대(오전 11시~오후 5시) 평균 생활인구는 지난해 6월 8558명에서 올해 6월 9414명으로 10.0% 증가했다. 이 중 40~60대 생활인구는 모두 감소했지만 10대는 324명에서 590명으로 82.1% 늘고, 20대는 1188명에서 1826명으로 53.7% 늘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경험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고 정의한다. 경험경제는 1999년 경영자문업체 스트래티직 호라이즌스의 공동창업자들인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가 정립한 개념이다. 경제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주력 단위가 상품에서 서비스로, 이를 넘어 경험으로 진화한다는 이론이다. 소비자가 상품과 서비스를 사는 과정 자체가 독립된 경제적 가치라는 것이다. 원두 값 몇백 원짜리 커피를 수천 원에 팔게 한 ‘스타벅스 경험’이 초기 성공 사례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된 오늘날 더 강력해지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영국 내 소비지출의 10년 변화를 추적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소비자의 63%는 구매한 물건보다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며 “경험경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접어들었고 소비자들은 감정적 만족에 지갑을 연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험경제를 이끄는 ‘호모 엑스페리엔스(소비하는 인간)’는 단연 Z세대다. 팝업스토어 전문기업 스위트스팟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팝업스토어 방문객의 72%가 20대였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일수록 실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아날로그 경험이 이색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SNS 이용률과의 연관성도 주목된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Z세대에게는 SNS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이때 SNS로 공유할 만한 내용은 여러 행사와 장소를 방문하고 브랜드를 체험하는 등 경험에 기반한다”고 진단했다.

1000명 모집 쇼핑몰 러닝, 10분만에 마감…소비자 전략에 ‘체험’ 필수로

실제로 경험경제의 활성화되는 단면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스타필드 수원은 이달 30일 오픈 전의 텅 빈 쇼핑몰을 달리는 이색 10㎞ 러닝 대회 개최를 알리자 1000명의 참가 정원이 접수 시작 단 10분 만에 채워졌다. 애초 한 달에 걸쳐 모집을 진행하려 했지만 주최 측은 당일 10분 만에 접수를 마감했다.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평소 쇼핑이나 식사를 즐기던 스타필드를 러닝 코스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재미있게 본 것 같다”며 “새로운 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5월 서울 명동 롯데타운 일대를 한약방이나 사우나 등 K일상 콘셉트의 체험장으로 꾸미자 방문객이 열흘 간 1만4000명에 달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식음료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올랐다. K패션 매출은 2배로 뛰었다.

국내 산업계는 이 같은 현상을 전면 수용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이나 용산아이파크몰, 롯데백화점 본점 등은 올 상반기에만 각각 수백 개의 팝업스토어를 열며 Z세대의 경험 놀이터를 자처하고 있다. 태생이 경험경제 플랫폼인 에버랜드는 최근 이색 경험에 대한 Z세대의 수요 급증에 대응해 월간 ‘제철’ 콘텐츠 시리즈를 추가 진행한다. 가족용 풋볼 트레이닝캠프와 김밥말이 이벤트 등 매달 새로운 체험거리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이마트는 올해 최소 6곳의 매장을 가족 식사나 독서, 여가 등 체류 경험을 강화한 몰 타입으로 전환한다. 지난해 리뉴얼한 킨텍스점의 매출은 재개장 전에 비해 74.0% 급증했다.

브랜드들의 판매 전략도 변하고 있다. 상품 구매 결정에 이르기 전 경험을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 마케팅 공식이 됐다. 애경산업의 스킨케어 브랜드 ‘원씽(ONE THING)’은 소비자들의 브랜드 체험을 위해 서울 북촌 ‘우주연 한의원’과 손잡고 한시적 체험 공간을 구축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서울 성수동에서 지난 5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장기 팝업스토어를 연다. 단순 차량 전시장을 넘어 세계 최초 내연기관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부터 각 시대의 클래식카를 선보이며 메르세데스-벤츠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김은미 스위트스팟 최고마케팅책임자(CMO) 겸 데이터마케팅본부장은 “최근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나 체험 전시를 여는 업체 중에는 신규 브랜드 뿐 아니라 농심 신라면이나 에르메스, 벤츠 등 시대를 관통하는 브랜드들이 많다”며 “이제 많은 업체들이 지금까지의 성공을 앞으로도 이어가기 위해 Z세대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그 열쇠는 바로 체험과 경험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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