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차피네로 지역은 붉은 벽돌로 가득찬 활기찬 동네다 . 그 중심에서 스튜디오 ‘이지데이터비즈( Easydataviz)’를 이끌어온 디렉터 호세 두아르테(Jose Duarte)에게 그간 이어온 작업에 관해 물었다. 그는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100개 이상의 참여형 데이터 프로젝트를 설계해온 인물로 그래프 대신 손수레와 시장 바구니, 풍선과 파이차트 등을 들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호세 디렉터는 하베리아나 대학(Pontificia Universidad Javeriana)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마쳤다. UN, 세계은행 등과 협업하며 평화, 기후, 건강 등 진지한 주제를 시민의 언어로 번역해온 그는 현재 스페인 엘리사바(ELISAVA)를 비롯 여러 대학에서 데이터 시각화 교육에도 힘 쏟고 있다.
◇작업실 이야기
Q. 수많은 디자인 분야 중 특별히 데이터 시각화에 매료돼 ‘Easydataviz’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Jose: 저의 뿌리는 사실 재료와 물리적인 프로세스를 다루는 산업 디자인에서 출발했습니다. 석사 학위로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는데요. 두 학문의 교차점이 제 작업의 강력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산업 디자이너로서 익힌 물질과 형태에 대한 감각을 활용해 공공기관과 지역사회가 정보를 통해 더 나은 소통을 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한 세 번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라는 특수한 맥락입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지역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세계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프라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콜롬비아 인구 중 인터넷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비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가 정보를 오직 디지털 채널로만 전달하려 한다면 콜롬비아 국민의 절반은 그로부터 완전히 소외된다는 뜻이죠.
이러한 한계 속에서 저는 디지털의 대안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2008년 무렵부터 아날로그 데이터와 데이터의 물리화를 실험하기 시작했어요. 스크린 속 사진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숨 쉬고 걸어 다니는 도시의 길거리 혹은 소외된 농촌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데이터 인터랙션을 구현하는 것이 제 오랜 도전 과제였거든요.
Q. ‘ Easydataviz’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Jose: 2007년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했을 시기, 작업의 아날로그적이고 수공예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싶어 ‘Handmade Visuals’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곧 ‘Easydataviz’라는 직관적인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죠. 데이터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데이터를 쉽게 다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2000년 후반, 당시 데이터 시각화 신에서는 마누엘 리마(Manuel Lima)의 유명 웹사이트 ‘Visual Complexity(시각적 복잡성)’처럼 복잡함 자체를 탐구하는 흐름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문하고 싶었어요. “만약 데이터가 극도로 단순해져서 아이들조차 전문가처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이죠. 그래서 말 그대로 ‘우리는 데이터를 가장 쉬운 방식으로 다룬다’는 의미를 담아 ‘Easydataviz’로 스튜디오 이름을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Q. 스튜디오 공간과 주변 로컬 디자인 신 소개 부탁드립니다.
Jose: 우리 스튜디오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가장 젊고 문화적 에너지가 집중된 지역 ‘차피네로(Chapinero)’에 있습니다. 보고타는 참 재미있는 도시예요. 건축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데, ‘붉은 벽돌’을 아주 많이 써서 도시 전체가 붉은빛을 띠는 아주 독특하고 강렬한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죠. 그중에서도 특히 활기찬 차피네로 지역은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로 불리기도 합니다. 수많은 디자인·그래픽·미디어 스튜디오와 예술가들의 작업실, 독립 서점과 카페 등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곳에서 공간을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공방 겸 팹랩(Workshop/FabLab)’을 소개하겠습니다. 3D 프린터와 CNC 머신 등이 가득한 곳인데요. 다소 소음이 있지만 재료를 만지며 손으로 직접 물리적 형태를 구상하는 공간입니다.
또 다른 공간 ‘카사살바(Casasalba)’는 숲속의 집이라는 뜻의 오피스로 공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요. 시끄러운 공방과 달리 주로 디지털 작업을 하거나 아이디어 구상 및 스케치를 하는 조용한 사유의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Easydataviz’는 디자이너, 커뮤니케이터, 인류학자 등 총 6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조직이지만 이웃 스튜디오나 갤러리들과 유대감이 굉장히 깊습니다. 올해도 주변 갤러리들의 초청을 받아 벌써 두 번의 협업 전시를 진행했어요. 그만큼 보고타의 디자인 신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적 성격이 뚜렷한 편이죠.
Q. 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고타는 아직 낯선 곳일 수 있지만, 최근 매력적인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지인 시선으로 바라본 보고타만의 독특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스튜디오 주변에 자주 방문하는 장소나 방문객들이 꼭 경험해 보길 바라는 현지 미식 문화 등을 추천해 주세요.
Jose: 과거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보고타를 그저 다른 휴양지(카르타헤나, 메데인 등)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 인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5~10년 사이 보고타는 엄청난 관광 도시로 성장했어요. 산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뷰와 함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커피 문화가 무척 매력적인 곳입니다.
재미있는 로컬 문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우리는 식사 때 탄산음료나 물 대신 항상 생과일주스를 마십니다(웃음). 콜롬비아에서는 상상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과일들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남미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엘 차토(El Chato)’ 역시 보고타에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닭고기와 감자를 진하게 끓여 아보카도를 곁들여 먹는 수프인 ‘아히아코(Ajiaco)’나 플랜테인 바나나를 으깨어 튀긴 ‘파타콘(Patacón)’을 꼭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작업 이야기
Q. 요즘처럼 모든 것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데이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오히려 ‘아날로그(물리적)’ 방식을 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더불어 대중이 디지털 화면이 아닌 물리적인 형태로 데이터를 마주할 때, 인지적·감정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인다고 느끼시는지
Jose: 앞서 언급했듯 아날로그적 접근법이나 물성화는 우리에게 순수한 ‘미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미의 제한적 환경에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선택한 생존 전략이에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정보 전달을 위해 디지털 방식을 고려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데이터를 평면의 모니터에서 꺼내 3차원의 물리적 세계로 가져오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질문들이 가능해집니다. “데이터를 귀로 들을 수 있을까?”, “냄새를 맡을 수는 없을까?”,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우리의 아날로그 및 참여형 접근법은 단순히 물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 있는 지역으로 우리가 직접 찾아간다는 점이 핵심이죠. 데이터를 다루는 행위는 더 이상 딱딱하기만 한 기술적인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인간적인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Q. 길거리로 나가 대중을 직접 만나고 현장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이 일종의 사회적 ‘운동(Movement)’이나 ‘실천(Practice)’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신념과 목적의식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이끈걸까요.
우리는 공동체를 ‘위한’ 디자인, 공동체와 ‘함께’ 하는 디자인을 넘어, 공동체를 ‘통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남미 주민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겪고있는 고통이나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는 수동적 피실험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와 나란히 앉아 ‘우리 동네에 이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능동적인 디자이너입니다. 프로젝트 철수 후에도 주민들이 스스로 그 데이터를 사용해 대화를 이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믿습니다. 정보의 주권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Easydataviz’의 궁국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하신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꼭 소개하고 싶은 대표작을 꼽는다면? 그 과정에서 겪었던 가장 큰 난관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합니다.
Jose: ‘Easydataviz’의 철학이 가장 잘 녹아든 프로젝트 중 하나로 ‘벨기에 & 스페인 교통 데이터 플레이 키트 작업’ 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느날 벨기에 교통 데이터 수집 기업 ‘Telraam’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로컬들과 교통 데이터를 공유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유일한 소통 창구는 웹사이트뿐이었습니다. 웹사이트에는 일반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2차원 그래프로 가득했어요.
우리는 벨기에 현지 주민들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기로 했습니다. 워크숍에서 ‘어떤 데이터를 이웃과 공유하고 싶은지’, ‘교통 문제 관련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등의 이슈를 공론화했죠.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공공장소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직접 버스 정류장이나 거리 벽면에 간단하게 부착하고 일종의 놀이를할 수 있는 ‘데이터 플레이 키트(Let’s play with data kits)’를 함께 디자인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데이터 소통 도구’를 사용자인 주민들과 직접 합작해낸 아주 의미있는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디자이너의 일방적인 작업이 아니라요.
Q. 벨기에 프로젝트에서 보여주신 ‘주민 참여형 소통’ 방식이 참 흥미로운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UN과 함께하셨던 파나마의 ‘데이터 카트’ 프로젝트는 공간의 맥락을 읽어내는 시각이 돋보였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겪었던 가장 큰 도전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Jose: ‘파나마 데이터 카트(Data Cart) 프로젝트’는 당시 UN과 협업했던 프로젝트인데요.
파나마는 도시 쓰레기 및 매립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우리는 UN과 함께 파나마 현지 리더들을 만나러 갔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보가 그 지역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파악하는 현지 맞춤형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우리는 조사를 통해 파나마 거리에서 과일이나 채소, 음료를 파는 ‘작은 손수레’가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일상적 소통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지역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찾을 수 없는 흥미로운 포인트죠(웃음).
우리는 로컬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쓰레기 데이터’를 가득 실은 ‘데이터 카트’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도시 전역을 돌아다니며 행인들에게 아주 단순한 게임을 제안했죠. “이 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중 정식 매립지로 가는 비율이 몇 퍼센트일까요? 맞춰보세요!” 주민들이 정답을 추측하고 소정의 상품을 받게되면 우리는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매립지로 가지 않은 나머지 절반의 쓰레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라고요.
이 질문은 무척 강력했어요. 주민들은 자신이 매일 걷는 길거리와 이웃에 방치된 쓰레기 문제를 비로소 데이터를 통해 인지하기 시작했거든요. 우리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을 모두 돌며 동일한 데이터셋에 대한 인식 차이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의 일상적 공간인 카트를 빌려 데이터 기반의 거대한 대화의 장을 만든 셈이었습니다.
Q. 현장 중심의 데이터 시각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지 잘 알겠습니다. Info+ 2025에서 발표하셨던 ‘콜롬비아 인플레이션 프로젝트’ 또한 기술적 데이터를 대중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해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Jose: 인플레이션은 매우 기술적이고 추상적인 경제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물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통계 수치로 접근한다면 완전히 길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남미의 서민들에게 물가란 개념은 당장 시장에서 단돈 5센트라도 아껴야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죠. 우리는 통계청의 딱딱한 경제 지표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합니다.
우리 ‘Easydataviz’는 카르타헤나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재래시장에 로컬 그래픽 스타일을 본뜬 부스를 세우고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어요. “3개월 전과 비교했을때 현재 가격이 오른 제품은 무엇일까요?” 주민들은 과일 등 작고 귀여운 보상을 위해 즐겁게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단 3~5분 동안의 짧은 대화를 통해 인플레이션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게 됐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를 ‘참여형 설문조사’로 확장하기로 합니다. 주민들에게 실제 시장 바구니를 쥐어주고는 최근 가격 변동이 가장 큰 품목들을 골라 담도록 했습니다. 일명 ‘장보기’가 끝난 후(웃음) 실제 가격 변동 수치를 바구니 안에서 공개했어요. 정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주민들에게 우리는 다시 물었습니다. “가격의 진실을 알게 된 지금, 당신의 바구니 품목을 어떻게 바꾸시겠습니까?” 단순한 물가 정보 전달을 넘어, 정보가 소비자의 실제 행동 변화와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데이터로 수집했던 유쾌한 ‘길거리 리서치’였습니다.
Q. “관객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하고, 놀라움을 느끼게 만들어라”라는 말씀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데이터 리터러시가 낯선 대중에게는 ‘유희적(playful)’으로 다가가면서도, 무겁고 진지한 주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사고’를 끌어내야 하는데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는지 궁금합니다.
Jose: 제 작업의 주요 핵심 포인트를 잘 짚어주셨어요. 우리 스튜디오가 데이터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바로 ‘대화를 촉발하는 매개체가 될 것’입니다. ‘Easydataviz’ 작업의 본질은 ‘대화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것은 표현 방식일 뿐이죠. 어떤 질문을 던져야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생각을 자극할 수 있을지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대화를 디자인할 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심리적 경계 사이를 영리하게 항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로 ‘완전히 안전한 공간(Safe Place)’과 ‘완전히 불안전한 공간(Unsafe Place)’인데요.
만약 길거리에 부스를 설치하고 지나치게 뻔한 질문만 던진다면 사람들은 지루해하며 우릴 그냥 지나칠 게 분명해요. 어떠한 지적 자극도 새로움도 없기 때문이죠. 반대로 너무 과격하거나 혹은 사적이거나 도발적이어서 완전히 불안전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중들은 방어 기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두려움을 느끼고 참여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공공 개입의 성공 여부는 이 두 극단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에 달려 있습니다. 질문은 기존의 생각을 뒤흔들 만큼 대단히 참신하고 도전적이어야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만큼은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또 흥미로워야 합니다. 지루하거나 기술적이지 않고,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주는 것. 우리는 이를 ‘샌드박스 효과’라고 부릅니다. 규칙 안에서 마음껏 탐험하고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플레이풀(Playful) 접근법’이야말로 복잡한 사회적 대화를 시민들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Q. 갤러리나 실험실이 아니라 ‘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 주로 데이터를 설치하시는데요.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을 단 몇 초 만에 멈춰 세우고 참여시키는 핵심 ‘디자인 장치’는 무엇일까요.
Jose: 물론입니다. 장소의 유동인구, 요일, 시간대라는 환경적 조건이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보고타에는 일요일마다 ‘시클로비아(Ciclovia)’라는 멋진 제도가 있는데요. 일요일 반나절 동안 도시의 주요 대로를 전면 통제하고 오직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만 개방하는 날이죠. 이 시기에 도로 한복판에 데이터 인터랙션 부스를 설치하면 평소보다 수십 배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축제처럼 참여합니다.
여기에 앞서 말한 공동체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가 결합된 뾰족한 질문과 작고 매력적인 로컬 인센티브가 더해진다면 바쁜 현대인들의 발걸음을 충분히 붙잡을 수 있죠.
◇앞으로의 이야기
Q. 지난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데이터 시각화 생태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관련 책도 여러 권 출간하셨고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데이터를 다루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Jose: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제가 좋아하는 책 ‘Beautiful Visualization’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제시카 헤이기(Jessica Hagy)의 비유를 소개하겠습니다. 눈먼 장님 세 명이 코끼리를 만지고는 각자 느낀 대로 코끼리를 묘사한다는 유명한 인도 우화가 있습니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기둥 같다고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벽 같다고 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뱀 같다고 말합니다. 세 사람 모두 자기가 만진 부분에 관해서는 완벽히 맞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모두 틀렸습니다.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데이터 시각화 신이 딱 이 ‘코끼리’와 같습니다. 예술가는 다리를, 저널리스트는 등을 디자이너와 개발자, 과학자는 또 각자 다른 부위를 만지면서 자기 학문의 시선으로만 데이터를 정의하고 있어요. 데이터 시각화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아직 다 같이 공유하지 못한 겁니다.
지난 10년이 각자의 영역에서 데이터를 물리화하고 시각화해보는, 말하자면 개별적 실험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진짜 과제는 이렇게 흩어진 지식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자가 디자이너와 어떻게 제대로 융합할 것인가, 디자이너가 저널리스트나 순수 과학자, 예술가와 어떻게 ‘화학적으로’ 결합해 코끼리의 온전한 모습을 함께 그려낼 것인가 하는 것이죠.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이 저와 이 시대 데이터 크리에이터들이 마주한 가장 흥미진진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