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19일 찾은 서울 서초구 인텔리빅스 본사에서는 대형견 크기의 사족보행 순찰 로봇이 주변을 감지하고 비상 상황을 알리는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라이온로보틱스가 개발한 순찰 로봇 ‘아르고스’다. 아르고스는 비전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인텔리빅스의 AI 로봇 관제 플랫폼과 연동해 현장에서 감지한 위험 상황을 관제센터에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순찰 상황 보고해”라는 요청에는 음성으로 보고하기도 했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사고 발생 후 관제센터가 영상을 수동으로 분석해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최소 수 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AI 관제 시스템으로는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다.
라이온로보틱스의 하드웨어 기술과 인텔리빅스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시너지를 낸 결과다. 인텔리빅스는 기존에 관제 서비스에서 분산돼 있던 네트워크 저장장치, 영상 반출, 비상벨 등의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했다. 또한 비전 AI 기술로 영상에 찍힌 비상 상황을 텍스트 데이터로 전환해 관제센터에서 그래픽 형태로 쉽게 볼 수 있도록 구현했다. 최은수 인텔리빅스 대표는 “26년 동안 실제 현장에서 축적한 약 7억 5000만 장 규모의 데이터를 통해 위험의 맥락을 이해하고 최적의 대응을 실행하는 안전 특화 AI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르고스가 자율 순찰과 상황 이해, 텍스트 보고서 생성이 결합된 피지컬 AI 시스템으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회사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착수한 ‘하이퍼-AI 네트워크 기반 조성사업’ 중 사족보행 순찰 로봇 실증에 참여하면서 협력의 범위를 개발에서 상용화로 확대했다. 양사는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 아르고스를 투입해 공장 내 위험 상황을 살피게 할 계획이다. 로봇을 비롯한 피지컬 AI 시스템이 원활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초저지연 네트워크 장비인 AI 랜도 설치된다. 정부는 5세대 이동통신 단독모드(5G SA)와 AI 랜을 결합한 하이퍼-AI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순찰 로봇 등 피지컬 AI 서비스를 실증해 향후 휴머노이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최 대표는 “비전 AI는 로봇 주변 객체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 간 관계와 현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단순히 ‘사람이 존재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구역에서 작업자가 쓰러져 있고 주변 설비에서 연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방식으로 복합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관제 시스템은 로봇 투입이 어려운 현장에서 CCTV로 상황을 구현한다. CCTV에 비전 AI 기술력을 결합하면 새로운 하드웨어를 설치하지 않고도 스마트도시로의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인텔리빅스는 한국도로공사가 수요기관으로 참여하는 ‘공공 AI CCTV 전환 사업’을 지난달 수주했다. 기존 CCTV 교체 없이 전국 고속도로 터널 위주로 교통사고, 고장·정차 차량, 정체, 보행자 출현, 낙하물 등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최 대표는 “사람이 수천 대에 달하는 CCTV 영상을 24시간 동일한 집중도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AI는 대규모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위험 상황을 빠르게 탐지할 수 있다”면서 “고속도로와 터널에서는 돌발 상황이 불과 몇 초 만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장·도로 등 사회 저변 곳곳으로 피지컬 AI 기술이 도입되면서 국산 AI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관제 시스템이 영상·센서·로봇을 통합하고 실시간 대응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발전한 가운데 방대한 고화질 영상을 비롯한 데이터를 지연 없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경망처리장치(NPU)가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집적되는 반면 NPU는 현장 곳곳에 뿌리내리는 AI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딥엑스는 최근 공군 기지 AI 경계감시체계 구축 사업에 자사 NPU를 공급했다. NPU를 통해 작동하는 AI가 사람과 차량·이상행동 등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면 감시 인력이 이를 바탕으로 위협 여부를 판단하고 대응하도록 한다. 리벨리온 또한 공공 AI CCTV 전환 사업을 통해 경남도청과 울산광역시에 자사 NPU ‘아톰맥스’ 기반의 서버 납품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관제 시스템은 무엇보다 돌발 상황에 대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면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GPU 기반의 AI 데이터센터와 연동하는 것보다는 현장에 NPU 서버를 두는 게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분야의 국내 관제 시스템이 AI 기반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무엇보다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최 대표는 “생성형 AI의 오류는 잘못된 정보로 끝날 수 있지만 피지컬 AI의 오류는 로봇이나 차량, 산업 설비의 잘못된 움직임으로 이어져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AI가 어떤 조건에서 행동하고, 어떤 상황에서 정지하며, 누가 그 행동을 승인하고 책임질 것인지 명확하게 설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가장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책임 있게 통제되는 자율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