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김민석 대표의 승리로 마무리된 뒤 재계와 금융계 여러 곳에서 “참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개인을 더 좋아하고 정청래 전 대표를 덜 지지해서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만약 정 전 대표가 연임했다면 국정(國政)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졌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 대통령이 당을 더 이상 장악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면 각종 경제정책의 강도와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져 변동성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게 이 인사의 판단이다.
사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상당수 경제정책은 8월 여당 전당대회를 결승선 삼아 경주마처럼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0조 원 규모의 호남 반도체 팹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균형발전, 안정적 전력 그리드, 메모리 초호황 등을 따져봤을 때 지방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도 이견을 내놓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필이면 왜 광주인가’에 대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답변이 나온 적도 없다. 서해안 화력발전 인프라, 대청·충주댐 등 풍부한 수원(水源),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가까운 환경 등을 따져보면 충청권이 더 해답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반도체 업계 인사들도 적지 않다. 호남 투자의 설득력을 덧칠하는 과정에서 숫자들이 부풀려지고 더해지면서 전국 투자 총액 4300조 원이라는 괴물같은 숫자가 만들어졌다.
전당대회 이전에 쏟아낸 부동산 대책도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당장 정책의 타이밍이 어긋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는 대출 규제를 풀어주고 반대로 금리 인하기에는 대출을 묶어 집값을 잡는 게 부동산 정책의 상식이다. 부동산 시장이 너무 빠르게 얼어붙으면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됐는데도 꽁꽁 틀어맨 대출 규제를 풀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39세 이하, 연소득 7000만 원 이하인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청년이 4억 원 이하 비아파트(빌라·오피스텔)을 살 때 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80%로 완화해준 게 그나마 유일한 금융 완화 대책이다.
부동산 세금 정책은 여당에서조차 벌써부터 수정론이 나오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제한한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 대통령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35세의 나이로 분당 59평 아파트를 매입했다. 변호사·성남시장·경기도지사까지 본인의 주무대가 성남과 인근 경기도권이었고 애초에 넓은 집에 살림집을 마련했으니 집을 옮겨야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다르다. 20평대 주택에서 시작해 아이를 낳으면 30평대로 옮기고, 아이의 학원이나 직장 때문에 더 가까운 집을 찾아 옮겨 다니다 보면 결혼 이후 3~4번은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내 집에 세를 주고 다른 집에 세를 얻었다는 이유로 ‘비거주 1주택’이라는 세금의 중과 부담을 져야 한다면 여기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 대통령의 집권 시기를 나눠 본다면 이번 전당대회부터 2028년 4월 총선까지를 2기(期)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사법 개혁과 같은 선명한 방향성, 속도전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왔다면 앞으로는 더 내실 있고 튼튼한 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을 잡는 게 계곡정비보다 쉽다”거나 “객관식 수능은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을 망치는 일”이라는 식의 강경한 발언은 자제하고 앞으로는 결과로 보여줘야 할 때다.
부동산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광주 팹, 용산 개발과 같은 대형 국책 과제들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난다. 용산에 청년임대주택을 짓는 게 이 대통령이 이야기해 온 ‘부동산 시장 정상화’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봤으면 한다. 광주 팹도 필요하다면 그 규모를 조절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삼성이나 SK가 호남에 이어 미국에 메모리 공장까지 지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사이클의 종료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