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대미 투자 협상이 진통을 겪는 가운데 메모리반도체 투자가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대미 1호 투자 대상으로 반도체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중장기적으로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인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 기업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향해 미국 내에도 반도체 팹을 건설하라는 압박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 요구가 우리 정부로도 향한 것이다. 이 요구는 특히 서남권 반도체 팹 건설 계획 발표 후 더욱 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반도체 팹 건설 의지를 밝힌 것 역시 미국 정부의 압박과 무관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도체 팹 1기 건설에만 150조~200조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미국 내 반도체 팹 유치 가속화를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비롯한 정부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내 전공정 팹 추가 건설 계획을 묻는 질문에 “적합한 부지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면서도 “기꺼이 할 의향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팹은 아니지만 파운드리 부문에서 테일러 팹 2기 연내 착공에 이어 1.4 ㎚(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추가 생산 시설 확보를 검토 중이다.
만약 대미 반도체 투자가 확정될 경우 그 구조는 한미 정부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출자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출자 회사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 양국이 지난해 11월 체결한 ‘한미 정부 간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대미 투자금은 미국이 운영 ·관리하는 특수목적법인(SPV)으로 납입되며 여기서 프로젝트별로 또 다른 SPV를 만들어 자금을 투입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프로젝트 SPV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한 뒤 대규모 자금 지원을 받고 팹 건설에 나설 수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미국 법인이 특정 지역에 팹 투자를 약정하면 프로젝트 SPV가 해당 미국 법인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도 거론된다. 프로젝트 SPV가 팹 건설 사업에 후순위 대출을 제공하고 일정한 이자·수익을 확보하는 구조나 매출이나 이익에 연동해 상환액을 결정하는 수익 연동형 금융 구조를 활용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일본의 투자 프로젝트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조가 짜일지 외부에 공개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일단 투자를 결정하고 수익 방안을 논의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1호 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하기 위한 양국 간 협상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미국으로 출국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한 차례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월 말~9월 초 발표를 목표로 미국과 디테일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