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날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역대’다. 이례적인 폭염은 여러 기상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달 2일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은 42.5도까지 치솟아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래 최고치를 새로 썼다. 7월 한 달간 전국 열대야 일수는 9.7일에 달해 ‘20세기 최악의 더위’를 겪은 1994년을 넘어섰다. 올해 초 기상청이 “폭염중대경보는 10년에 한 번 정도 발령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 무색할 만큼 중대경보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뉴노멀이 된 ‘40도 폭염’은 누군가에게는 유독 가혹했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는 빽빽이 들어선 집들이 35도 안팎의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20m가량 이어진 골목에서 그늘이라고는 낡은 처마 밑이 유일했다. 3평 남짓한 방에서 주민들은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과 젖은 수건에 의지해 겨우 땀을 닦아냈다. 영등포역 대합실에는 더위에 밀려 나온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연신 부채질을 했다.
생계를 위해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이들도 있다. 공사 기일과 배달 시간을 맞추느라 달궈진 자재를 나르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최근 경기 양주에서는 한 라이더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지고도 “배달해야 한다”며 병원 이송을 거부하기도 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작업 중지권은 이들에게 먼 나라 얘기였다. 올해 온열질환자 4명 중 1명은 실외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결국 폭염 속에서 불평등은 더욱 선명해진다. 최근 서울시의회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서울 외곽과 도심의 ‘폭염 취약도’는 확연히 갈렸다. 격차를 만든 요인은 고령인구 비율과 무더위쉼터 접근성, 녹지 면적 등이었다. 전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농촌에서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 비율은 도시의 약 30%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있는 쉼터도 경로당 등 특정 시설에 편중돼 있거나 야간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기록적인 폭염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폭염이라도 방어막의 두께에 따라 고통의 무게는 달라진다. 취약계층에게 폭염은 일상의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방어막을 더 두텁고 고르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