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왜 죽었을까.’
구급차를 탄 지 1년쯤 됐을 무렵, ‘죽음’이 한 소방관의 머릿속을 메웠다. 현장에는 너무 많은 삶과 죽음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의 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뜨내기 소방관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구급대원에게 죽음은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희한했다. 죽음에 대해 쓴 글이 위로가 되었다. 나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나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가난과 불행은 유별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마음에, 소방관은 죽으려는 이들에게 “일단 나가서 걸어보라”고 말을 건넸다. 지난해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를 출간한 백경(필명·40대) 씨 이야기다.
백 씨는 10년차 소방관이자 브런치와 X(옛 트위터), 스레드 등에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다. 지난 7월엔 정부가 계곡 출입을 통제한 것을 두고 “자유를 뺏겼다”는 글이 올라오자 “헛소리”라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계곡에 왔는데 행정안전부 지시로 출입이 통제됐다”며 “계곡에서 내가 알아서 물놀이하겠다는데 나라가 왜 막느냐”는 누리꾼의 글을 공유한 백 씨는 “한 번이라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맘때 계곡 구조 출동을 자주 나가는데, 절반은 물속에 가라앉은 지 오래된 사람을 건져 올리는 출동”이라며 “구조대원들은 불어난 흙탕물 속으로 끊임없이 몸을 던지고, 물가에는 떠오르지 않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밤새 메아리친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빠, 아빠’, ‘여보, 여보’, ‘형, 형’이라는 절규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물이 불어난 계곡의 출입 통제를 두고 자유를 빼앗겼다거나 공산국가라는 헛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은 빠르게 확산되며 공감대를 이끌었다.
백 씨에게 글은 거울이다. 필명 백경도 ‘맑은 거울’이란 뜻이다. 매일 새벽 책상에 앉아 타자를 칠 때마다 그는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이따금 제가 쓴 글이 실제의 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심히 부끄러워져요.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글은 그럴듯하게 써놨네?’ 하면서요. 그럴 때면 제 행동거지나 마음을 다시 돌아봅니다. 반성하고,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죠.”
구급차를 타며 마주한 삶과 죽음의 단상을 기록한 책 ‘당신이 더 귀하다’를 출간한 백 씨를 인터뷰했다. 백 씨가 맞닥뜨린 구조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온몸에 토사물을 묻힌 주취자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가 부지기수. 한마디로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깊은 슬픔을 참아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백 씨는 이 일이 좋다.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어서다. 구급차를 타면서부터 그의 마음속엔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했다. “인내, 용기, 연민, 사랑. 어느 한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다만 그것은 세상의 가장 깊고 낮은 자리에 숨어 있었다.” (책 ‘당신이 더 귀하다’ 中)
백경 작가와의 일문일답
– 지 난달 게재하신 계곡 구조 현장 글이 화제가 됐죠. 여름철 안전사고 관련해 당부하실 말씀 있나요?
△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다고 하죠. 계곡 물놀이 사고가 특히 그렇습니다. 물이 불어나는 걸 인지하는 순간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괜찮겠지’ 하며 머뭇거리는 동안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수위가 오르고 사고가 발생합니다. 요즘 수영장 등에서도 아이들 익사 사고 소식을 종종 접합니다. 아이들이 귀찮아하더라도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히고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주셔야 합니다.
-소방관을 ‘14급 공무원’이라고 표현하신 게 인상 깊습니다.
△‘14급 공무원 ’이라는 표현은 우리 조직이 낮은 자세로 국민 여러분을 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올린 말입니다. 처음엔 이 일을 불을 끄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많이 참아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더러운 걸 참아야 하고, 졸린 걸 참아야 하고, 이유 없는 적의도 참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나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기꺼이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소방공무원을 어떻게 바라봐줬으면 하나요?
△그냥 저희를 같은 인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면 한숨도 쉬고 부당한 일에는 화도 내고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요. 무조건 영웅시하지도, 그렇다고 공무원이라고 하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종종 먹을 것을 보내주는 시민들도 있다고요. 그럴 땐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렇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느 때는 과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확실한 건 덕분에 든든히 배를 채우고 출동에 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다 잘 먹거든요.
-소방청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은 PTSD와 우울증, 수면장애, 문제성 음주 등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 위험군으로 분류됐다고 합니다. 가장 시급한 지원책은 무엇일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PTSD를 유발하는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인데, 저희 직업 특성상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까요. 개인적으로 심리 지원 확대에 힘을 쏟는 것도 좋지만 출동 부서 대원들이 출동 대기할 때만이라도 심신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방관들이 출동만 나가는 줄 아시는 분도 있는데 사무실 내에서도 위험물 관리, 소화전 점검 등 각종 행정업무 등으로 바쁘거든요. 개중에는 실효성이 없는 업무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을 줄이기만 해도 대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덜 피로한 상태로 출동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겠죠.
-“사람은 누구나 살아내는 이상 존귀하다”, “당신이 더 귀하다”…책 속에 인간애가 느껴지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요?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 넘쳐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자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남과 나를 비교하는 문화와 나와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문화(그것도 문화라면)가 만연한 탓이겠지요. 정확히 이와 반대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름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 같은 모양의 퍼즐만 모여서는 그림이 완성될 수 없듯이 사람도 그러해야 합니다.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점점 더 가벼워진다고요. 작가님께 ‘죽음’이란 뭔가요?
△신이 죽음을 만든 까닭은 죽음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끝이 있다는 분명한 진실은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가’란 질문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 질문에 어울리는 답을 찾게 합니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삶을 돌아볼 이유가 없고, 그런 삶은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무한히 쫓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사는 것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있어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조언자입니다.
-죽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세상엔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살 만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뜹니다…그런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큰 슬픔에 빠져있는지 어느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대단한 사람이라느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느니 등의 말들은 당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거짓말이라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당신이 살아내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진실이란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시며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순간도 기쁘지만, 무엇보다도 기쁜 건 어떤 사람이 저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 전염병 환자, 알코올 중독자, 우울증 환자, 세상이 손 내밀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치료를 받는 동안 잠시나마 얼굴에 기쁨이 비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일의 기쁨을 느낍니다.
-작가님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또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사랑하길 주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SNS와 유튜브엔 오늘의 진상손님과 파렴치한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내 아이를 혼낸 선생은 죽일 놈이고 반대 진영 정치세력을 향한 적대감도 숨기지 않죠.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는 세상이 저는 두렵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진정한 유대가 희미해지는 게 두렵습니다. 사랑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값없이 돕는 일이 보통의 일이 되는 세상. 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사람,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출동 벨이 울린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건다. 출동 중인 구급대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진정하시고 말씀해 보세요. 나는 지금 당신에게 달려간다.” (책 ‘당신이 더 귀하다’ 中) 오늘도 백 씨는 힘차게 구급차를 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