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4일 만에 누적관객 137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원작인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극장가에서 시작된 관심이 서점가로 옮겨붙으면서 관련 도서가 잇따라 출간되고, 기존에 출간된 책까지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독자들을 겨냥해 원전 완역본부터 입문서, 해설서, 만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놀런이 스크린에 옮긴 ‘오디세이아’…수천 년 이어진 귀향의 이야기
‘오디세이’(Odyssey)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무렵 지은 것으로 알려진 대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에 있다.
‘오디세이’와 ‘오디세이아’는 서로 다른 작품이 아니다. ‘오디세이’는 영어식 명칭이며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오디세이아’를 ‘오디세이’의 그리스어 이름으로 설명한다. 출판물에 따라서는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가까운 ‘오뒷세이아’라는 표기도 사용된다.
제목은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말 그대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오디세이아’를 이해하려면 호메로스의 또 다른 대작 ‘일리아스’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작품은 모두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후대 서양 문학과 예술, 철학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서양 문명의 중요한 원천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두 서사시가 바라보는 전쟁과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일리아스’가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명예, 죽음 그리고 전쟁이 낳은 비극에 집중한다면 ‘오디세이아’의 중심에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이 놓여 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무려 10년에 걸쳐 바다를 떠돌며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세이렌의 노래,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마녀 키르케 등 익숙한 모험담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오디세이아’를 단순한 영웅 모험담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긴 방황을 거치며 오만과 욕망을 내려놓고 결국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과정이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방황과 귀환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비롯해 수많은 문학과 영화, 미술 작품이 ‘오디세이아’의 영향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완역부터 만화·해설서까지…‘오디세이아’ 쉽게 읽는 법
고전의 가치와 별개로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처음 접하기란 쉽지 않다. ‘일리아스’는 1만5693행, ‘오디세이아’는 1만2110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영화 관람객들이 고전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의 관련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더숲이 펴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전 읽기에 앞서 작품의 맥락을 파악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카네기 메달 수상 작가 질리언 크로스와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일러스트레이터 닐 패커가 함께 작업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주요 인물과 상징, 현대 문화에서 고전이 갖는 의미 등을 함께 설명해 원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만화로 그리스 신화의 전체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책도 있다. 비채의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는 만화가 이우일이 3년에 걸쳐 완성했으며 고전학자 이준석이 감수했다. 총 3권으로 구성됐으며 1권 ‘신들의 우화’, 2권 ‘헤라클레스’, 3권 ‘오뒷세우스’로 이어진다. 신들의 시대에서 영웅을 거쳐 인간의 시대로 이어지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흐름을 만화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원전의 내용을 부담 없이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번역서도 나왔다. 이화북스의 ‘한권으로 읽는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육혜원이 번역했다. 운문 형식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이야기의 흐름과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읽기 편하게 구성했다.
보다 충실한 원전 독해를 원하는 독자라면 을유문화사의 ‘오뒷세이아’를 선택할 수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가 완역했으며, 고대 그리스 원전이 지닌 신화적 분위기와 비극적 정서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작품을 예술과 인문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책도 있다. 민음사의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아트인문학’ 강의로 알려진 김태진 작가가 집필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관련 명화와 신화 속 이야기를 함께 소개해 원전의 내용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영화 한 편이 불러낸 고전 열풍…관련 도서 판매 595.5%↑
영화 개봉을 계기로 관련 서적을 찾는 독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 7월 ‘오디세이’ 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595.5% 증가했다. ‘오디세이’, ‘오디세이아’, ‘오뒷세이아’ 등 제목에 관련 명칭이 포함된 도서를 대상으로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다.
특히 특정 번역본 한 권에만 관심이 몰린 것이 아니라 완역본과 입문서, 해설서 등 다양한 유형의 책이 함께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 측은 “완역본뿐 아니라 입문서 등도 고르게 판매되며 고전 원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수천 년 전 쓰인 고대 서사시가 한 편의 영화로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를 계기로 관객들이 스크린 속 모험을 넘어 오디세우스가 걸어온 긴 여정의 원형을 직접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영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고전 읽기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극장가에서도 ‘오디세이아’ 관련 프로그램 잇달아
극장가에서도 고전 ‘오디세이아’ 관련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인다.
CGV는 영화 상영과 무관하게 ‘오디세이’의 원작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일 씨네드쉐프 용산 스트레스리스 시네마에서 열리는 ‘CGV 북클럽’에서는 참가자들이 리클라이너 좌석에 앉아 ‘오디세이아’를 읽고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좌석마다 비치된 도서는 자유롭게 열람한 뒤 한 권씩 가져갈 수도 있다.
메가박스는 ‘오디세이’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미술 작품과 함께 살펴보는 ‘시네 도슨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신화 속 인물과 사건을 서양 미술 명작을 통해 해설하는 한편, 영화의 원전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와 ‘일리아드’를 요약해 트로이 전쟁의 배경과 주요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강연도 준비했다. 메가박스 측은 “‘오디세이’를 보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미술사 속 명작들을 스크린으로 감상하면서 ‘오디세이’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