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한 경기도가 각종 기본소득과 기회소득 지급을 잇달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대표적 지방세인 취득세수가 부동산 경기 악화로 감소하는 등 세입 여건이 악화한 가운데 그동안 늘려온 현금성 복지 지출이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향후 청년·예술인 기본소득 도입까지 검토하는 정부도 사업 효과를 충분히 따져 확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이달부터 ‘기후행동 기회소득’ 리워드 지급을 중단한다.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 등 16개 탄소중립 활동에 참여한 도민에게 실적에 따라 연간 최대 6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2024년 7월 도입된 뒤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지만 올해 편성한 사업비 350억 원 가운데 300억 원 가까이가 소진되자 재정 상황을 고려해 8월 활동분부터 리워드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예술활동증명서를 보유한 19세 이상 예술인 중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사람에게 연간 150만 원을 지급하는 ‘예술인 기회소득’도 올해 지급액을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인다. 경기도는 당초 부족한 사업비를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재정난에 올해는 한 차례 75만 원만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경기민예총은 지급 축소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선 상태다.
‘농어민 기회소득’과 ‘청년 기본소득’도 예산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 농어민에게 연간 60만~18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농어민 기회소득은 도비 예산이 지난해 680억 원에서 올해 460억 원으로 줄었다. 도는 당초 부족분을 추경에 반영할 계획이었지만 재정 여건이 악화하면서 추가 예산 확보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019년 경기지사 시절 도입한 청년 기본소득도 올해 4분기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 원씩 연간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로 도는 추경을 통해 4분기분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예산 확보 여부에 따라 지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도 사례가 충분한 재원 대책 없이 반복 지출을 늘릴 경우 세입 여건이 악화했을 때 재정 운용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도는 재정이 가장 풍부한 지자체 중 하나인데도 이런 상황이 됐다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며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소득이나 자산이 적은 계층에 재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도의 기본소득과 기회소득 관련 도비 예산은 2022년 1826억 원에서 지난해 2498억 원으로 3년 만에 36.8% 늘었다. 하지만 재정난이 본격화한 올해는 197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526억 원(21.1%) 줄었다.
같은 기간 도의 채무도 빠르게 늘었다. 경기도의 채무 잔액은 2022년 3조 8362억 원에서 지난해 6조 1357억 원으로 3년 만에 약 60% 늘었다. 예산 대비 채무비율도 같은 기간 9.3%에서 12.9%로 3.6%포인트 상승했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복지를 늘렸기 때문에 재정난이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중앙에 세원이 편중된 현행 지방재정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취득세수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줄어든 반면 반도체 등 도내 산업 성장에 따른 세수는 지방에 충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사례는 정부의 기본소득 확대 정책이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시행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정부가 역점 추진 중인 농어촌 기본소득의 경우 2027년 시범사업 종료 이후 전면 도입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상 지역을 확대하면 재정 부담은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따르면 농어촌 기본소득을 인구감소지역 69개 군 전체로 확대할 경우 매년 4조 901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 기본소득’, 보건복지부는 ‘청년 참여소득’ 도입을 각각 검토하고 있어 향후 기본소득 확대에 따른 재정 소요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교수는 “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현금성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결국 후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