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위기 상장사들이 인수합병(M&A) 자문사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외부에서 신사업을 사들여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리고 상폐를 피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무리한 M&A는 불확실성이 크고, 성공한다 해도 시가총액에 신사업 가치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일PwC 상장기업지원센터에는 지난달부터 상폐 기로에 있는 상장사들의 M&A 문의가 크게 늘어나 자문 계약으로 이어졌다. 상장기업지원센터는 상장사를 대상으로 투자 유치, 자산 매각 등 각종 자문을 제공하는 조직이다. 삼정KPMG 역시 쇄도하는 질의에 대응하고자 딜어드바이저리(DA)본부 내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통합 자문 서비스를 앞세워 자사주 소각, 유상증자와 같은 단기 전략부터 구조조정, M&A, 사업조정 등 중장기 체질 개선 방안까지 제공하고 있다. 대형 법무법인에서도 상폐 회피 전략을 찾고자 하는 상장사들의 법률 상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수가 널뛰기하는 장세 속에서 양호한 실적을 내고도 퇴출선에 몰린 상장사 사례는 이미 다수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초 이익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A사는 요즘 사업 성과보다 주가 부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모 자금을 해외 사업에 투입한 뒤 지난해와 올 1분기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내려 연초 대비 44% 빠진 2000원대로 밀렸다. 시총은 700억 원대에서 300억 원대로 반 토막이 났다.
금융 자동화 기기 업체 B사도 비슷한 처지다. 지난해 매출 485억 원, 영업이익 29억 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13.3%, 20.6% 늘고 올 들어 배당까지 실시했지만 시총은 약 200억 원에 그쳤다. 실적, 주주 친화 행보와는 무관하게 지수 흐름에 시총이 좌우되는 구조가 굳어진 결과다. 지금과 같은 고변동성 장에서는 주가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워 상폐 공포가 또 다른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가시적인 실적 개선세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밀린 개별 상장사가 시총을 회복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은 제한적이다.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의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에는 현금 투입 부담이 커 M&A를 일종의 동아줄로 여기는 것이다. 상장사들이 찾는 잠재 매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전통산업의 비상장 업체가 주로 거론된다. 다만 그만한 매물은 몸값이 비싼 데다 시간이 빠듯한 매수인은 협상에서 입지가 불리할 공산이 크다. 적절한 대상을 찾았다 하더라도 대출이나 유상증자로 인수 대금을 조달하는 것은 새 난관이다. IB 업계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폐 요건이 강화되면서 M&A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가 시총에 그대로 반영될지는 불확실하다. 소형 상장사가 무리하게 인수 대금을 조달하려다 오히려 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업계에서는 투자 유치나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재무적 체력을 먼저 탄탄하게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시장에서는 부실기업을 신속히 걸러내 증시 전반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취지가 변질될 수 있어 별도의 유예기간 부여 등 유연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부실기업을 솎아내려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하기보다 최초 상장 때 더 면밀하고 엄격하게 평가해 신규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