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낙범은 1960년생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이자, 한국에 본격적으로 TV가 등장하면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 속한다. 작가의 20대는 압축 성장과 민주화가 폭풍처럼 휩쓸고 간 대한민국의 1980년대와 겹친다. 이러한 경험은 1990년대, 즉 작가가 30대에 접어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고낙범은 1987년 홍익대 회화과 동기였던 노경애, 명혜경, 이불, 정승(샌정), 최정화 등과 함께 ‘뮤지움(MUSEUM)’이라는 소그룹을 창립했다. 이 그룹은 즉흥성이 강하고 유희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며, 감각적 탐닉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영향을 받은 1960년대생 작가들의 대체적인 특징은 개인적 성향이 강조돼 정치·사회적 이슈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탈정치화된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민주화로 인해 대의적 이슈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많은 예술가는 일상과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으며 심미적 자유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특징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등장하기 시작한 소규모 그룹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된 원동력이자, 신세대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새로운 외침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일상 및 개인적 욕구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뤘다.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약 10년간 전시나 작품의 제목에 가장 흔하게 쓰였거나 인상적으로 각인된 단어는 ‘매체’, ‘모색’, ‘시각’, ‘표현’, ‘형상’ 등이다. 직접 검색해 본 결과에서도 가장 많이 쓰인 전시 제목 단어 상위 10개에 이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정례 전시인 ‘젊은 모색’ 역시 1981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청년작가전’이라는 명칭으로 시작했으나 1990년부터 ‘젊은 모색’으로 변경됐다. 이는 밀물처럼 다가온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시대적 흐름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제작한 ‘포트레이트 뮤지움-신체에서 얼굴로’ 시리즈이다. 단색조의 거대한 초상화 3점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작가 이상윤, 당시 홍익대 교환학생이었던 미국인 세스 프랭클린 슈나이더, 그리고 일본인 나카무라 마사토이다. 지인을 묘사한 각 초상화는 인물의 특성보다는 단순한 색면으로 드러나며 익명성을 띤 화면으로 바뀐다. 고낙범은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 초반, 6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도 일했다. 오늘날에는 이른바 ‘투잡’이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력이었다. 그러나 큐레이터로서의 경험은 그가 미술사의 핵심 개념을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됐다. 색채, 재현, 리얼리티, 전통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종의 주석을 달듯 자신만의 회화를 찾고자 했다. ‘포트레이트 뮤지움’ 시리즈는 큐레이터의 관점과 화가의 관점을 복합적으로 융합해 자신만의 인물 컬렉션을 만든 결과물이다. 자신이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남겨두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기에, 등장인물은 모두 그의 지인들이었다. 얼굴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도구이자 상징이기에 작가는 초상화를 정체성 모색의 일환으로 채택했으며, 색채 역시 그만의 중요한 도구였다. 특히 색채를 다룰 때 심리적, 감정적 반응을 강하게 느꼈는데, 그중에서도 노란색에 유독 긴장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란색은 일종의 분열색이다. 이중적 감각의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생과 사’, ‘일출과 일몰’, 또는 ‘황금과 배설물’처럼 말이다. 또한 노란색은 정신적인 한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 점이 노란색을 아주 복잡하게 만든다”라고 언급했다.
고낙범의 오랜 친구인 예술가 나카무라 마사토의 작품 ‘이발소/마크/서울’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에 전시돼 있다. 199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로 유학 온 나카무라 마사토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발소 표식이 한국에서는 적·백·청 3색 줄무늬 위에 빨간 복숭아 모양의 오브제가 올려진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보편적이면서도 세부적인 차이를 지닌 문화 기호로서 이발소 마크를 다뤘다. 1992년 최정화 작가가 운영하던 스페이스 오존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전시를 개최했으며, 이 작품은 당시 출품작이다.
한일 미술교류 역사를 다룬 ‘로드 무비’ 전시의 또 다른 출품작인 ‘밝은 전망’ 사진 시리즈에서는 당시 작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홍대 앞에 특색 있는 클럽들이 막 생겨나던 무렵, 고낙범과 나카무라 마사토 등 일군의 작가들은 연대를 구축하며 서브컬처를 만들고 즐겼다. 필자 역시 현장에서 그 분위기를 직접 경험했기에, 고낙범과 나카무라 마사토의 조합을 한 전시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전시 오프닝 직후 작가 두 명과 필자까지 세 명이 35년 만에 을지로의 한 골목에서 나눈 ‘우리 모두 잘 살아남았다’는 식의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들은 희망을 품으면서도 긴장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던 당시 젊은 작가들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관객 역시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시대적 저항 에너지를 짐작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낙범의 ‘포트레이트 뮤지움-신체에서 얼굴로’와 나카무라 마사토의 ‘이발소 마크/서울’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9월27일까지 열리는 ‘로드 무비-1945년 이후 한일미술’전에서 만날 수 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과장
★고낙범(1960~) :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학위를 수여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다수의 전시를 개최했고 미술이론을 다졌다. 1998년 개인전을 필두로 본격적인 전업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색채의 언어화를 목표로 색 자체의 독자적인 표현 가능성과 심리적, 문화적 코드를 탐구했다. 주요 개인전을 학고재 갤러리, 코리아나 미술관, 미메시스 뮤지엄 등에서 개최했고 2019년 가파도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