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혹평과 주가 급락으로 홍역을 치른 페라리의 첫 전기차 ‘루체’가 올해 판매 목표를 예정보다 일찍 채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 시간) 소식통 2명을 인용해 페라리가 올해 루체 신차 500대가량을 팔겠다는 목표를 이달 초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5월 공개 이후 두 달 만에 나온 성과로 중국에서 수요가 특히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루체는 페라리가 처음 내놓은 4도어 5인승 모델이다.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를 지낸 조니 아이브가 디자인을 맡았고 가격은 55만 유로(약 9억 2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공개 당시 페라리를 상징하던 날렵한 실루엣이 사라지고 둥글고 단단한 형태로 나오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저가 양산차와 비교하는 조롱이 쏟아졌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페라리 회장은 전설이 무너질 위기라며 루체에서 ‘카발리노 람판테’(뛰는 말) 엠블럼을 떼라고 요구했다.
밀라노증시에 상장된 페라리 주가는 공개 이후 첫 거래일에 8% 넘게 빠졌다. 이 와중에 엔리코 갈리에라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이달 갑작스레 물러나고 BMW 출신 인사가 자리를 채웠다. 회사 측은 해당 인사가 루체 출시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라리는 루체를 전기차에 익숙한 중국과 미국 실리콘밸리의 신흥 부유층을 겨냥한 모델로 규정해 왔다. 내연기관을 선호하는 기존 고객에게는 전환을 권하지 말라고 딜러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는 2030년까지 누적 2500대, 연간 600대 수준이다. 전체 연간 판매량의 5% 남짓이라 시장에서도 무리 없는 수치로 본다. 베네데토 비냐 최고경영자(CEO)는 물량을 제한하는 만큼 30%에 이르는 회사 영업이익률이 전기차 사업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페라리가 배기음 같은 기존 고객의 감성을 붙들지 않고 과감한 디자인을 고른 배경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내연기관 규제가 강해지는 중국에서 과시적 소비를 꺼리는 분위기를 감안해 가까이 봐야 페라리임을 알 수 있는 절제된 형태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럭셔리카 애널리스트 스콧 셔우드는 페라리의 마케팅과 고객 이해도가 경쟁사보다 앞선다고 평가했다.
페라리는 공개 다음 날 존 엘칸 회장이 이끄는 대표단을 레오 14세 교황 관저로 보내 시승 행사를 열고 교황에게 루체의 스티어링휠을 선물했다. 8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카 위크에서 루체 첫 생산분을 자선 경매에 올린다. 경매업체 소더비는 낙찰가가 110만 달러(약 16억 1000만 원)를 넘길 것으로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