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논설위원
공장은 멀쩡했다. 그런데 생산은 멈췄다. 28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하자 TSMC 일본법인 JASM은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생산라인을 세운 채 장비와 클린룸을 점검했다. 안전 점검을 마친 뒤 생산은 단계적으로 재개됐지만 건설 중인 2공장은 여진에 대비해 일부 공사를 중단했다. 소니와 르네사스도 안전 점검을 위해 생산을 멈췄다. 구마모토는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의 상징이다. 실리콘아일랜드로 불리는 이 지역에 일본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TSMC와 소니 등을 유치했다.
반도체 공장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생산시설이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회로를 새기는 초미세 공정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동도 불량의 원인이 된다. 노광장비는 미세한 흔들림에도 정밀도가 달라지고 클린룸은 작은 먼지 하나에도 수율이 떨어진다. 전력은 잠시만 끊겨도 안 되고 용수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지진이 끝나도 곧바로 생산을 재개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연재해와 화재 앞에서 반도체 산업은 이미 여러 차례 취약성을 드러냈다. 1999년 대만 대지진은 글로벌 PC용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을 불렀고 지난해 강진도 TSMC 생산라인을 멈춰 세우며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는 2018년 삼성전자 평택 공장의 30분 정전으로 낸드플래시 웨이퍼 5만~6만 장이 손상돼 글로벌 공급량의 3.5%가 사라졌다. 2021년 미국 텍사스 한파로 전력 공급이 끊긴 오스틴 공장에서는 웨이퍼 7만 장이 폐기됐다. 반도체 공장은 생산설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장을 움직이는 인프라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도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 공장만 들어선다고 반도체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재난에도 생산을 이어갈 복원력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 AI 시대 반도체 경쟁은 공장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공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