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 전 세계 테크기업 중 두 번째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며 유례없는 실적을 쓴 데 이어 하반기에도 인공지능(AI) 호황의 수혜를 극대화해 가파른 성장이 기대된다. 특히 메모리 공급 주도권을 앞세워 빅테크 등 주요 고객사를 최장 5년간 묶어두는 장기공급계약(LTA)을 확대하고 계약 조건도 유리하게 체결해 수익 안정성이 높아졌다. 고부가가치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도 하반기 본격 확대해 시장에서는 3분기 매출이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넘어서며 영업이익도 2분기를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000660) 는 29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핵심 고객사를 포함해 10여 개 고객과 LTA 협상을 마무리했다”며 “주요 고객들과 추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가격 구조도 단일한 방식보다는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과 협의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중장기 사업 안정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LTA는 메모리 기업과 빅테크가 기존 분기 단위로 새로 맺던 계약 대신 한 번에 3~5년간의 거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계약 방식이다. 빅테크들은 계약 갱신을 최소화함으로써 매 분기 메모리 가격 인상의 부담을 피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최장 5년간 고객사를 묶어둘 수 있어 LTA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와도 장기 공급을 포함하는 5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SK하이닉스가 LTA로 확보한 매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단순 LTA 건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질적으로도 개선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빅테크와 3~5년간 계약하더라도 공급가격을 완전히 고정하지 않고 기본 가격만 정해둔 채 메모리 시세 변동에 맞춰 일정 범위 내에서 실제 가격을 조정하는 조건을 넣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분기 단위 계약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메모리 가격 인상을 계약 기간 중에도 반영할 수 있다.
메모리는 2030년까지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시세 우상향에 맞춰 SK하이닉스에 유리한 계약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LTA는 당초 장기로 계약을 맺자는 약속이라 세부 조건에 따라 가격 조정도 가능하다”며 “빅테크들도 세부 조건보다는 메모리 확보 자체가 최우선 관심사”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또 빅테크로부터 구매 대금 지불 전에 미리 일정 금액을 예치금으로 받는 조건도 LTA에 추가해 계약 구속력을 키우고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도 앞당길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LTA 강화와 함께 하반기 양대 사업 전략으로 6세대 HBM(HBM4)의 본격적인 램프업(증산)을 추진한다. 최근 수율을 전 세대 HBM3E 수준으로 올리고 양산에 돌입했다. HBM4는 엔비디아 신형 AI 가속기 ‘베라 루빈’ 등에 탑재될 최신 HBM 제품으로 올 하반기와 내년에 걸쳐 빅테크들의 수요가 집중될 예정이다. 김기태 SK하이닉스 HBM 세일즈마케팅담당 부사장은 “주요 고객들과 내년 HBM 공급 물량과 가격을 순조롭게 협의 중”이라며 “D램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만큼 HBM 가격 협의에도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8%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각각 21%)보다 높지만 지난해 동기 69%에 비해서는 격차가 줄었다. 삼성전자가 올 2월 업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하며 추격 속도도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도 HBM4 적기 공급과 물량 확대에 집중하며 대응에 나선 것이다. SK하이닉스는 7세대 HBM(HBM4E) 샘플도 공급하며 내년 양산을 준비한다.
HBM 확대는 매출은 물론 수익성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현재 메모리 가격은 HBM3E보다는 범용 D램이 이끌고 있지만 빅테크들이 경쟁적으로 고성능 AI 가속기를 개발하면서 HBM4를 시작으로 몸값이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HBM4E는 개당 200만 원으로 HBM4(100만 원)보다도 2배 비쌀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올해 HBM 평균판매가격(ASP)은 Gb(기가비트)당 1.51달러로 범용 D램(1.61달러)에 못 미쳤지만 HBM4와 HBM4E가 상용화하는 내년에는 3.22달러로 범용 D램(2.15달러)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HBM뿐 아니라 낸드도 그래픽처리장치(GPU) 근처에 장착해 AI 데이터 관리를 보조하는 ‘니어 GPU 스토리지’로 제품군을 넓힌다.
SK하이닉스는 투자 전략 역시 수익성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으로 조달한 40조 원을 용인과 청주의 첨단 팹 건설에 전액 투자해 고수익의 차세대 메모리 선점을 노린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수요에 맞춰 팹 투자 속도를 조절해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올해 설비투자(CAPEX) 역시 40조 원 후반대로 실적 성장에 비해 보수적으로 집행한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는 102조 8671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분기 100조 원 돌파가 예상된다. 3분기 영업이익도 80조 원 5789억 원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