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결정적 배경은 법원이 후원자 김한정 씨가 낸 2100만 원을 오 시장을 위한 여론조사 비용으로 인정한 데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22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공모해 명태균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김 씨에게 비용을 대신 내도록 요청했다고 판단했다. 제3자가 후보자의 정치 활동에 필요한 여론조사 비용을 부담한 것은 정치자금 기부에 해당하며 오 시장과 강 전 부시장이 이를 수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여론조사 10건 가운데 비공표용 3건과 공표용 2건 등 5건 총 2100만 원의 대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 측이 의뢰한 여론조사를 통해 명 씨에 대한 검증을 마친 뒤 김 씨에게 비용 대납을 요청했고 김 씨가 이에 따라 입금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납 인정의 핵심 근거는 김 씨와 명 씨 사이에 친분이 생기기 전에 돈이 지급됐다는 점이었다. 김 씨는 2021년 2월 1일 미래한국연구소 회계 담당자 강혜경 씨 계좌로 1000만 원을 보냈다. 당시 김 씨는 명 씨나 강 씨를 알지 못했고 명 씨를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김 씨가 명 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받은 것은 같은 달 17일부터였고 첫 만남도 21일 이뤄졌다. 재판부는 이런 선후 관계에 비춰 오 시장 측의 요청이 없었다면 김 씨가 비용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송금액과 조사 비용이 맞아떨어진 점도 근거가 됐다. 당시 비공표용 여론조사 비용은 한 차례당 약 350만 원이었고 오 시장 관련 비공표 조사는 1월 22일부터 29일까지 세 차례 실시됐다. 재판부는 김 씨가 보낸 1000만 원이 이들 조사 비용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김 씨가 개인적 친분으로 명 씨를 도왔다는 오 시장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오 시장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정치적 동기도 충분했다고 봤다. 당시 오 시장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뒤졌고 여성 가산점까지 고려하면 일반 시민 지지도를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이 명 씨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를 요청하고 비공표 조사와 선거 전략에 관한 설명을 들은 정황, 강 전 부시장이 설문 문항을 협의하고 오 시장 측이 결과를 전달받아 표본 수와 공표 방식에 의견을 낸 점도 유죄 판단을 뒷받침했다.
재판부는 명 씨 진술이 일부 바뀐 점은 인정하면서도 카카오톡 대화, 조사 시점과 결과 전달 과정, 김 씨의 송금 내역 등 객관적 정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나머지 5건과 1200만 원은 제3자의 의뢰나 명 씨의 자발적 조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대가 관계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양형에서는 오 시장의 정치 경력과 재판 태도가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2100만 원이 적지 않은 정치자금이고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후보자 의뢰 여론조사와 결부돼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과 다선 서울시장을 지내 정치자금법의 취지를 잘 알면서 범행을 주도했고 재판에서도 책임을 회피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오 시장은 “명태균의 진술과 간접증거만으로 내려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시장직은 유지된다. 김건희 특검법에 따라 이르면 내년 1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는 명 씨 진술의 신빙성과 김 씨 송금, 오 시장 측 요청 사이의 연결을 간접증거만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다시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판결 직후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필귀정”이라며 오 시장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촉구한 반면 국민의힘은 정치적 파장을 우선한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1심 유죄로 오 시장의 대권 행보와 서울시정에도 부담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서 예산안과 조례안 심사를 둘러싼 견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 시장은 시청 간부 회의에서 “개인 재판으로 걱정을 끼쳐 유감”이라며 “서울시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