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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사러 갔다가 헛걸음…‘30년 방치’ 한약사 제도에 소비자만 골탕

21.07.2026 1분 읽기

한약사들이 약국을 열고도 상비약조차 제대로 구비하지 못해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약사가 운영하는 약국과 거래하면 약사단체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한 제약사들이 의약품을 납품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약국과 한약국의 명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다보니, 애먼 소비자들만 약을 사러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있다.

21일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5월 기준 한약사 개설 약국은 전국 862개소에 달한다. 이 중 34개소(3.9%)에서 전문의약품 청구 실적이 발생했다. 한약사는 정부가 1993년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신설한 면허 제도다. 현행법상 한약사는 한의사가 아닌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에 대한 조제 권한이 없지만, 몇몇 한약사들은 고용 약사를 두고 전문의약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처럼 한약사들이 고용 약사를 내세워 전문약 조제 영역에까지 발을 넓히는 배경에는, 약사 단체의 압박으로 인해 일반의약품 판매조차 순탄치 않은 차가운 현실이 자리한다. 경남 김해에서 오랜 기간 약국을 운영하다 최근 울산 북구로 이전한 한약사 A씨는 일반의약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 오픈하는 약국의 개설자가 한약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약사회가 주요 제약사 20~30곳에 공문을 돌렸고,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탓이다. 공문에는 “한약국에 약품을 공급하는 것은 약사회와의 상생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기존 거래 업체들도 약사회 눈치를 보느라 공급을 미루고 있다”며 “영업방해나 다름없는 행태가 이어지면서 손님들이 지명하는 약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전국에 개설된 한약국들 중엔 ‘행복한 약국, 편안한 약국’과 같이 간판만으로 일반 약국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A씨 사례와 같이 약사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제약사들이 납품을 중단하면 지역 주민들이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된다. 제약사들 역시 한약사 개설 약국에 거래를 거절하거나 유통 대리점을 통해서만 우회 납품하도록 유도하는 등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에는 한약사가 개설한 창고형 약국이 의약품 공급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둘러싼 신경전은 30년 넘게 해묵은 문제다. 당초 정부는 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는 의약분업처럼 한의약 분야에서도 한의사는 진단을, 한약사는 조제를 맡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30년 넘게 방치하면서 약사와 한약사 간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약사법이 양약과 한약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약사법 제20조 제1항은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또한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 없이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엄밀히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현행법상 일반약을 한약 제제와 한약 제제가 아닌 약으로 구분하지 않는 탓에 보건 당국의 오락가락하는 유권 해석도 번번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부가 약사법상의 모호한 규정을 빌미로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와 교차 고용 문제를 방관하는 사이 직역 갈등과 의약품 공급 현장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약사법상 약국 개설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반드시 위법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약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

현재 한약사 면허를 보유한 인원은 누적 3500명에 달한다. 1996년 경희대와 원광대, 1998년 우석대 등 3개 대학에 한약학과가 설치된 이후 매년 120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30년 넘게 대립각을 세워온 두 단체가 한 목소리로 한약사 제도 정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약사회와 산하 지부 약사들은 청와대 앞과 국회 등에서 300여 일 넘게 한약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릴레이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임채윤 대한한약사회 회장은 “한약사 제도를 만든 정부가 정작 뒷짐만 지고 있다”며 “제도의 명분인 한의약 분업이 정녕 불가능하다면 한약사 제도를 폐지하고 구제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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