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로크 당테롱에서 평생을 살아온 올리비에 시케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 공연감독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으로 ‘지역만의 정체성’을 꼽았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페스티벌과 함께 마을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피아노 페스티벌은 라로크 당테롱을 대표하는 정체성이 됐다”며 “이 정체성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지역경제에도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시케 감독은 특히 작은 도시일수록 대규모 개발보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라로크 당테롱은 교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축제 기간마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리지만 대중교통 확충은 주정부와의 협의, 재정 문제 등이 얽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관람객이 해마다 이곳을 다시 찾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피아노 페스티벌이라는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도시는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지만 작은 도시는 그럴 여력이 없다”며 “결국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지역만의 콘텐츠이며 이는 주민과 민간·지방정부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축제를 단순한 지역 문화 행사가 아니라 도시재생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관광과 지역경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문화부 산하 연구기관 DEPS에 따르면 2019년 프랑스에서는 약 7300개의 축제가 열렸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축제가 10년 이상 이어질 정도로 지속성도 높다. 오랑주 오페라 축제와 칸 영화제, 아비뇽 연극제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에서 축제가 지역재생 전략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장기적인 문화정책과 지방분권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부터 축제를 단순한 관광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문화 자산을 활용하는 정책 수단으로 바라봤다. 지방정부가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 사업을 자율적으로 추진하고 예술가와 문화 단체가 지역의 역사와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공공이 공간과 재정을 지원하는 협력 구조도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방식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농촌과 중소도시에서도 지역색을 살린 축제가 잇따라 생겨났다. 지역마다 축제의 규모와 내용은 달랐지만 민간의 자발적인 기획, 지방정부의 장기 지원, 지역 문화유산의 활용이라는 공통된 원칙은 유지됐다. 축제를 지자체가 주도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 자산이자 도시 브랜드로 꾸준히 축적한 것이다.
축제가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방문객이 늘었고 숙박·외식·관광 등 지역경제에도 파급효과가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도 축제를 도시 브랜드와 일자리, 지역 이미지를 만드는 장기적인 지역정책으로 본다. 방문객 수나 단기 매출보다는 지역의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키우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시케 감독은 프랑스 역시 지역 소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산업과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은 젊은층이 대도시로 떠나는 문제를 겪고 있다”며 “라로크 당테롱도 축제 기간과 비수기의 격차라는 한계가 있지만 결국 지역만의 콘텐츠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