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차로 40분가량 남쪽으로 달리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산실로 불리는 멘로파크에 자리한 ‘스타트업벤처캠퍼스(SVC) 실리콘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SVC가 입주한 건물은 시가총액 100조 원을 웃도는 미국 온라인 투자 플랫폼 기업 ‘로빈후드’가 창업 초기 사옥으로 쓰던 곳이기도 하다. 또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달 13일(현지 시간) 찾은 SVC 실리콘밸리에서는 국내 액셀러레이터인 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과 함께 방미한 한국 스타트업 20곳이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었다. 또 다른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스탠퍼드대 혁신·디자인연구센터(SCIDR)의 김소형 교수로부터 현지 진출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스타트업들은 현지 미국 벤처캐피털(VC) 심사역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도 진행했다.
SVC의 가장 큰 장점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해외 지원 기관들이 한 건물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벤처투자와 기술보증기금·창업진흥원·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입주해 기업의 성장 단계와 수요에 맞춰 지원한다. 창진원과 중진공은 기업 발굴과 보육, 현지 시장 검증, 멘토링과 판로 개척을 담당한다. 기보는 기술 기업에 보증과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한국벤처투자는 글로벌 펀드와 현지 VC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자 연결을 지원한다. 이종민 한국벤처투자 미국사무소장은 “기업의 생애 주기에 필요한 지원을 한 지붕 아래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SVC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중기부가 SVC를 세워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과 국외 창업 기업 지원을 본격화한 것은 현지 한인 벤처 생태계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더 체계적이고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AI 및 반도체 관련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지사를 내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현지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가 국외 창업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글로벌 기술·투자의 중심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선점할 수 있어서다. 이 소장은 “변방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만들어진 후 이를 보고 움직이지만 중심은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 낸다”며 “실리콘밸리에는 가장 앞선 시장에서 사업하는 창업자와 이를 이해하고 투자하는 VC가 함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피지컬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 등 신산업의 주요 흐름은 실리콘밸리에서 먼저 형성된 뒤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창업자가 현지에서 사업을 펼치면 최신 기술과 시장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고 글로벌 기업·투자자와의 협력 기회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대표는 “AI와 딥테크 스타트업은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고 사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기업들의 미국 본사 설립은 단순한 선택이라기보다 글로벌 사업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에 가깝다”고 짚었다. 이어 “우리나라 정부가 과거처럼 법인 소재지만 보고 외국 기업으로 분류하기보다 국내 산업 생태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평가하고 지원하는 것은 물론 SVC를 통한 현지 창업 초기 기업들도 발굴·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