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131조 원을 넘어 세계 5위권에 진입했고 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의 기술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만큼 첨단산업과 전략기술 육성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단순히 투자 규모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기업 연구자들의 전문성을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반도체와 AI, 첨단 바이오 같은 전략기술은 R&D뿐 아니라 사업화, 공급망, 규제, 표준·인증, 보안까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실제 기술개발을 경험하며 성공과 실패를 축적한 기술개발인의 노하우가 국가 전략 수립에 필요한 이유다. 산업계도 이러한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한 정부 R&D 지원 정책은 ‘기업 주도형 정부 R&D 개편’이었고 산업기술 혁신에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는 ‘수요 기업 주도 과제 기획·평가 체계’가 꼽혔다. 결국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경험과 판단이 국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 현장의 전문성이 갈수록 희소한 자산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33년까지 82만 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새로운 인재를 확보하는 것과 함께 산업 현장에 오랫동안 축적된 역량을 국가 혁신에 활용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기업이 이를 활용했다면 이제는 산업계가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기술개발인의 역량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엔지니어의 연구 성과와 기술개발 경험, 산업 기여도, 현장 문제 해결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자격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기술개발인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전문인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둘째, 국가가 인정한 기술개발인의 경험을 정책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책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현장과 정책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수석과학관 제도를 통해 주요 부처에 기술 전문가를 배치하고 국가 기술 혁신 정책의 실행력을 높여왔다. 우리도 기술 관련 기능이 큰 부처를 중심으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 산업 현장의 기술적 판단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축적된 전문성이 다시 국가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 전문성을 공인받은 기술개발인이 국가 핵심 기술 인재로서 정책에 참여하고 기술 로드맵 수립과 기술 안보 대응, 후배 인재 양성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개발인이 성장하고 다시 역량을 인정받는 구조가 마련될 때 지속 가능한 혁신도 가능해진다.
다행히 올해는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다. ‘기업부설연구소법’이 시행됐고 ‘기술개발인의 날’도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다. 기술개발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출발이다. 기술개발인의 전문성은 국가의 자산이다. 그 자산을 얼마나 잘 축적하고 활용하느냐가 기술 패권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