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세계경제포럼은 향후 3~5년 안에 산업과 사회를 바꿀 가능성이 큰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발표한다. 많은 사람은 이를 미래 유망 기술 리스트로 적극 활용한다. 조금 다르게 이 목록에 대해 ‘앞으로 어떤 기술이 뜰 것인가’를 보는 것보다는 ‘인류는 지금 어떤 문제를 가장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기술은 시대의 필요를 반영한다. 증기기관은 생산성을 올렸고 인터넷은 연결성과 정보 접근의 보편성을 확장했다. 스마트폰은 이동성과 실시간 정보처리 역량의 강화를 이뤘다. 그렇다면 올해의 10대 떠오르는 기술들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기술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보인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바이오플라스틱, 사회적 로봇, 마이크로니들, 친환경 수소, 디지털 의료, 저탄소 시멘트와 같은 기술들이 선정됐다. 각각은 플라스틱·의료·에너지·건설 등 특정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었다. 그 후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AI는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됐다. 지난해 리스트에는 ‘과학적 발견을 위한 AI’가 포함됐고 올해는 월드 모델이 선정됐다. AI는 이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과학을 탐구하고 신약을 설계하며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연구 파트너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올해 리스트에서 더 주목한 것은 AI가 아니다. 올해 선정된 열 가지 기술, 즉 모든 것의 전력망 연결(Everything-to-Grid), 직접 리튬 추출, 수동형 복사 냉각, 과불화 화합물 분해 기술, 정밀 발효, 개인 맞춤형 mRNA 암백신 등은 얼핏 보면 서로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더 많이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더 적게 쓰는 기술들로 표현할 수 있다.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전력을 지능적으로 활용하고 더 많은 광산을 개발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자원에서 리튬을 회수하며 냉방을 위해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대신 전기를 거의 쓰지 않고 냉각한다. 더 많은 경작지를 만들고 더 많은 가축을 키우는 대신 미생물을 세포 공장으로 활용한다. 20세기의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는 경쟁이었다면 21세기 기술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의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개발 비용 등의 문제로 과거에는 하나의 약으로 수백만 명을 치료하려 했다. 이제는 환자마다 다른 치료제를 설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엑소좀 기반 약물 전달과 개인 맞춤형 mRNA 암백신은 의료가 대량생산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변화는 융합이다. AI는 양자컴퓨팅과 결합하고 정밀 발효는 대사 공학, 합성생물학과 자동화 기술이 융합되며 에너지 기술은 배터리와 디지털 전력망이 함께 고려되면서 최적화된다. 미래 산업의 경쟁은 개별 기술 간의 경쟁이 아니라 기술 생태계의 경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 것인가, 최고의 AI를 개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기술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융합해 세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기술 패권 시대의 경쟁력은 추격이 아니라 연결에서 나온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대체 불가 기술·산업·제품·서비스(NFTIPS)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세계경제포럼의 최근 기술 흐름은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킨다. 앞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는 가장 많은 기술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가장 독창적인 기술 생태계,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생태계를 기반으로 산업과 사회를 구축한 나라가 될 것이다. 기술의 미래는 더 지능적으로 연결되고 더 지속 가능하며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는 준비하는 나라의 것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