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군마현 마에바시시. 시청 인근 주오 거리 상점가를 지나 바바카와 거리로 접어들자 도시 계획 수업을 위해 현장을 찾은 동양대 마치즈쿠리학과 학생 20여 명의 발걸음이 멈췄다. 초록 언덕을 닮은 시로이야 호텔이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은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이내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다. 보도블록 곳곳에는 기업과 시민·단체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200m 남짓한 거리를 만드는 데 돈과 힘을 보탠 이들의 흔적이다. 학생들을 인솔한 도미야스 료스케 동양대 교수는 “마에바시시는 과거 매력도가 낮은 도시로 꼽혔지만 최근 민간 개발을 통해 도시 자체가 예술품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걷자 세타농림학교 학생 50여 명이 3m 간격으로 화단에 꽃을 심고 있었다. 주민들은 물을 뿌리며 가로수를 돌봤다. 40년째 이곳에 사는 요코보리 씨는 “공사를 끝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후의 관리”라며 “민간이 거리를 만들었다면 이제 주민들이 이어받아 오래가게 할 차례”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원예와 미화 등 5개 자치 조직을 꾸려 거리 관리에 참여하고 있다.
마에바시 도시 재생의 특징은 사업이 준공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이 돈을 내고 전문 민간 조직이 사업을 기획하면 주민이 관리와 운영을 이어받는다. 행정은 각 단계가 끊기지 않도록 제도적 길을 열어준다.
바바카와 거리도 행정 예산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다. 시로이야 호텔과 편집숍·미술관 등이 들어선 뒤 거리 정비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마에바시시는 별도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일본 안경 기업 진즈의 창업자인 다나카 히토시 대표가 지역 기업인 모임인 ‘태양의 모임’을 꾸렸다. 지역 기업들은 약 3억 엔(약 28억 원)을 모았다. 처음 24곳이었던 참여사는 현재 65곳으로 늘었다.
기업들이 모은 돈을 실제 도시 재생 사업으로 바꾼 곳은 민간 도시 재생 법인 마에바시디자인커미션(MDC)이다. MDC가 사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해 공사를 발주했다. 돈을 낸 기업들이 각자 원하는 사업을 벌인 것이 아니라 전문 조직이 마에바시시의 도시 비전에 맞춰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마에바시시는 2012년 민관이 함께 ‘메부쿠(Mebuku·Where Good Things Grow)’라는 도시 비전을 세웠다. 고향의 활력이 떨어지고 청년들이 떠나는 모습을 본 다나카 대표는 시 공무원들과 미국 포틀랜드를 찾아 도시 운영 방식을 연구했다. 2019년에는 이 비전을 실제 사업으로 옮길 MDC를 설립했다. 도시를 개발하는 조직이 아니라 개발 이후 운영까지 이어갈 조직을 별도로 만든 셈이다.
행정과 민간의 역할도 나눴다. 시는 도로와 하천 등 기반시설과 인허가·제도를 맡고 MDC는 도시 운영과 개별 프로젝트 기획을 담당한다. 바바카와 거리 정비 당시에도 MDC가 기부금을 받아 사업을 추진했고 시는 도시재생특별조치법상 도시 이용 증진 협정을 활용해 법적 근거와 인허가를 지원했다.
주민들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거리에는 다시 사람이 모였다. 마에바시시가 지난해 8월 바바카와 거리 등 중심 시가지 4개 구역을 조사한 결과 시간당 통행량은 1748명으로 거리가 만들어지기 전인 4년 전보다 68% 증가했고 체류 시간 역시 같은 폭으로 늘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자 지난해만 거리 주변에 새 점포 5곳이 문을 열었다. 매달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거리를 방문한다.
지난해 문을 연 한 갤러리에서 일하는 아쿠쓰 나쓰키 씨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마에바시시에 관련 일자리가 없어 한동안 가족 사업을 도왔다. 그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생기면서 고향에서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제는 예술을 경험하러 일부러 마에바시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고 전했다. 9월에는 민간과 주민 주도로 첫 마에바시 국제 예술제도 열린다.
이가라시 아쓰시 마에바시시 시가지정비과장은 “지역마다 다나카 씨처럼 지역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있다”며 “행정의 역할은 그런 사람을 찾아 끝까지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