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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달러 도리토스의 항복…‘2만원 삼계탕’에 보내는 경고

12.07.2026 1분 읽기

세계 식음료 시장의 공룡기업인 펩시코는 올해 2월 세계 최다 판매 감자칩인 레이즈와 인기 스낵 도리토스·치토스 등 간판 과자의 가격을 최대 15% 인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넘게 이어왔던 가격 인상 행진을 기업이 스스로 되돌리는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시장 지배력이 높고 강력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가 감내하리라 믿었던 지난 행보에 대한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기도 했다.

가격 인하 후 5개월여가 흘렀지만 펩시코가 받아든 경영 성적표는 시원치 않다. 펩시코 북미 스낵 사업의 판매량은 6월 13일까지 3개월 동안 전년 동기 수준에 머물렀다.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늘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환율 변동 등 외적 효과를 제외한 오가닉 매출은 제품 가격을 낮춘 영향으로 2% 감소했다.

미국 펩시코의 가격 실험과 실적 부진은 서울의 삼계탕 한 그릇 값이 평균 1만8000원을 넘어 2만원 시대를 눈앞에 둔 한국에 남의 일이 아니다. 제품 가격이 한번 한계선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떠나고,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성장할 수 있다는 자만, 1만원 봉지과자 낳아

펩시코의 스낵 사업부 ‘프리토레이(Frito-Lay)’는 펩시코의 핵심 사업부다. 코카콜라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음료 부문과 달리 스낵 시장에서는 치토스, 레이즈, 도리토스 등이 시장을 주도하는 쪽이었다. 미국 내 짠맛 스낵 시장의 60%를 프리토레이가 점유할 정도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프리토레이의 핵심 슬로건은 ‘프리토레이 파이브 포에버(Frito-Lay Five Forever)’였다. 매년 매출을 5%씩 성장시킨다는 의미고, 이는 실제로 수십 년간 지켜졌다.

팬데믹 당시 공급망 차질과 인건비 상승 이슈가 불거지자 프리토레이는 이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기업 어테인에 따르면 411그램 도리토스 한 봉지의 미국 내 중위 판매가격은 2021년 8월 3.98달러에서 2024년 3월 5.94달러로 2년 7개월 만에 49.2% 급등했다.

초기에는 통했다. 팬데믹 정부 지원금으로 지갑이 두둑했던 소비자들은 가격표를 크게 따지지 않았고, 이후 2년간 매출은 두 자릿수로 성장했다. 라몬 라구아르타 펩시코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초 투자자들에게 “소비자 심리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분위기가 꺾인 것은 도리토스의 가격이 봉지당 6달러 선을 넘기 시작하던 2024년이다. 매출과 판매량이 동시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프리토레이 파이브 포에버’ 슬로건은 빛이 바랬다. 일부 판매처에서는 한 봉지에 7달러를 넘겼다. 한국 돈으로 과자 한 봉지가 1만원을 호가하는 수준인데, 물가가 비싼 미국 내에서도 ‘7달러 도리토스’는 식품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가격 인하에도 수요 안살아나…“적정 가격의 중요성, 이제 실감”

당시 프리토레이 안팎에서는 지나친 과자 가격에 대한 문제 제기가 터져 나왔다. 통신에 따르면 프리토레이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묵살됐다. 월마트도 가격 인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리토레이의 진열 공간을 줄였다. 그 자리는 더 저렴한 자체 브랜드(PB)나 경쟁사 제품으로 채워졌다.

결국 펩시코는 지난해 초 레이첼 페르디난도가 미국 식품 사업부 수장으로 취임한 이후 상황 재검토에 들어갔다. 회사는 올해 2월 대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양을 줄이지 않고 권장 소매가를 최대 15%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페르디난도는 “지난 1년간 소비자들의 의견을 경청해 왔고, 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초반에는 인하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월마트·코스트코·타깃 등 주요 소매점은 진열 공간을 평균 두 자릿수 비율로 늘려주겠다고 했다. 4월 발표한 1분기 보고서에서 오가닉 매출도 1%가량 늘고 판매량은 2% 증가했다.

반등은 한 분기 만에 꺾였다. 이달 9일 발표된 2분기 실적에서 북미 식품 부문 매출은 2% 감소했고 판매량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라구아르타 CEO는 “소비 심리가 예상보다 악화됐으며 주된 원인은 유가”라고 말했다. 중동전쟁 여파로 미국 휘발유 가격이 분기 내내 갤런당 4달러를 웃돌자 소비자들이 과자에 돈을 잘 쓰지 않았던 것이다. 과자 가격은 내렸지만 소비자의 지갑은 이미 인하된 가격 수준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얇아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식품 산업 분석가 니콜라스 페러데이의 총평은 사안의 본질을 짚는다. “펩시코는 판매량 감소를 보고 가격을 더 일찍 내렸어야 했다. 많은 기업처럼 펩시코도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을 감수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제야 일반 소비자에게 ‘적정 가격(affordability)’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국내 식료품 가격 부담 세계 최고 수준…소비자 지갑 한계선 고려해야

시선을 국내로 돌리면 식당과 마트에서 수많은 품목이 가격 적정선을 넘나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지역 삼계탕 평균 가격은 올해 5월 기준 1만8154원으로 5년 전(1만4077원)보다 29.0% 올랐다. 삼계탕만이 아니다. 5월 기준 서울의 삼겹살(200g 환산) 외식 가격은 2만1321원으로 처음 2만1000원을 넘었고 냉면(1만2615원), 비빔밥(1만1769원)도 1만원을 훌쩍 넘겼다.

외식 물가뿐 아니라 식품 원자재 물가도 동시다발적으로 올랐다. 상반기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동향에서는 중동전쟁발 고유가·고환율 여파로 조기(16.9%), 쌀(15.1%), 인삼(14.6%), 망고(13.1%), 고추장(12.1%) 등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대규모 할인을 진행하는 것 같지만 막상 가보면 할인 품목은 물량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장바구니에 몇 개 담지 못하고 온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중동전쟁과 고환율 탓이라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식료품 가격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물가 통계에서 한국의 식료품·비주류음료 가격 수준은 2024년 기준 146으로 OECD 평균(100)보다 46% 높다. 스위스(147)에 이어 두 번째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든 자영업자든, 혹은 판매사든 인상이 누적돼 소비자 지불 의사의 한계선을 넘는 순간 수요는 이탈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펩시코 미국 식품 사업부 수장인 페르디난도는 지난 3월 한 콘퍼런스에서 “소비자들은 기업, 특히 대기업이 자신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 신뢰를 보낸다”며 “가격 부담을 낮추는 일이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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