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장중 7000선을 위협받는 급락장을 겪으면서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이 5개월 만에 110조 원 아래로 내려앉았다. 외국인 매물을 받아내던 개인의 ‘실탄’이 말라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107조 1279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20일(104조 1291억 원)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예탁금은 지난달 29일 132조 4697억 원을 기록한 뒤 8거래일 내리 줄어 열흘 새 25조 원 넘게 증발했다.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넣어뒀지만 아직 집행하지 않은 현금성 자금이다.
예탁금 급감의 배경에는 최근 증시의 극심한 출렁임이 있다. 코스피는 지난달 22일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9114.55까지 올랐다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반도체 고점 우려가 겹치며 가파르게 미끄러졌다.
미 중부사령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고 밝히는 등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다시 불붙은 데다 호실적에도 인공지능(AI) 고점론이 이어지며 반도체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지난 8일에는 코스피가 5.35% 폭락한 7246.79에 마감했고, 전날 서킷브레이커에 이어 하루 만에 매도 사이드카가 또 발동됐다. 지수는 이 과정에서 한때 7063.76까지 밀렸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25배까지 떨어져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저점(6.27배)마저 밑돌았다.
지수가 급락하는 동안 개인은 저가 매수에 나서거나 아예 시장에서 돈을 빼며 예탁금을 소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1~10일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12조 3246억 원어치를 던지는 동안 개인은 9조 3669억 원어치를 사들이며 지수 하단을 떠받쳤다.
하지만 이 흐름에도 균열이 생겼다. 개인은 지난 8일 358억 원 매도 우위로 돌아선 뒤 10일까지 사흘 연속 ‘팔자’를 이어갔다. 지난달 19일부터 줄곧 팔기만 하던 외국인은 8~9일 잠시 사자로 돌아섰다가 10일 다시 3226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빚을 내 투자한 자금도 줄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9일 36조 6336억 원으로 5월 26일(36조 2548억 원) 이후 최저치로 내려왔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뒤 갚지 않은 돈으로 이 잔고의 감소는 ‘빚투’ 열기가 식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차거래 잔고는 9일 161조 8808억 원으로 전 거래일(159조 3416억 원)보다 늘었다. 지난 6일 175조 3808억 원에서 이틀 연속 줄었다가 다시 방향을 튼 것이다.
국내에서 몸을 사리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개인의 공격 본능이 살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최근 한 주간(3~9일) 순매수 결제액 1위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하루 수익률을 3배로 따라가는 이른바 ‘속슬’이었다. 2위는 한국 증시를 3배로 추종하는 ‘코루’가 차지했다.
두 상품의 순매수 결제액은 각각 15억 5383만 달러(약 2조 3363억 원)와 1억 3891만 달러(약 2088억 원)로, 합치면 2조 5000억 원을 웃돈다. 급락장에서도 반등을 노린 레버리지 베팅이 해외 계좌로 몰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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