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소멸 극복하는 농협 현장망] <2> 금융사막에 남은 창구
농촌소멸의 그림자가 생활 인프라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식료품점이 사라진 마을에서는 장보기가 어려워지고 금융점포 축소와 돌봄 공백은 고령 주민의 일상을 흔든다. 농번기 일손 부족은 농업 생산 기반까지 위협한다. 서울경제는 농촌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농협이 펼치는 식품·금융·복지 현장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오늘 비가 쏟아지네요” “물에 잠긴 논도 여럿 보이던데…”
9일 낮 12시, 충남 청양군 정산농협 2층 고객휴게실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창구 업무를 마친 이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커피와 율무차를 앞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주민들은 농사 이야기와 안부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했다.
청양은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사람이 줄고 상권이 약해지면서 생활 인프라도 얇아지고 있다. 정산농협 인근 우체국과 새마을금고 지점은 인력 한계로 점심시간에 문을 닫지만 농협은 정산·청남·목면·장평 등 네 곳의 금융 점포에서 창구를 유지하고 있다. 오전 농사일을 마친 고령 농민들이 점심시간을 쪼개 통장을 정리하거나 공과금을 내러 찾을 수 있는 곳이 농협인 셈이다.
농촌의 금융 공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 점포는 2020년 말 3303개에서 2025년 말 2688개로 18.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2만 2583대에서 1만 7865대로 20.9% 줄었다.
반면 농축협 점포는 같은 기간 4783개에서 4875개로 92곳 늘었다. 농협은행 점포는 1121개에서 1063개로 줄었지만 감소 폭은 약 5%에 그쳤다. 시중은행 점포와 ATM이 줄어드는 동안 농협 계통 점포가 지역 금융망을 지켜낸 셈이다.
지역별 차이도 뚜렷하다. 2025년 말 기준 4대 시중은행 점포는 10곳 중 6곳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반면 농협은행의 수도권 점포 비중은 37%였다. 농협은행과 별도로 운영되는 지역 농축협의 수도권 비중은 25.3%에 불과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보면 농축협 점포 수는 4대 시중은행의 4.24배에 달한다. 시중은행이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농촌에서는 농축협 창구가 사실상 생활 금융망 역할을 하고 있다.
청양에서 수십 년째 밤 농사를 짓는 표승하(59) 씨는 “이 동네는 고령자가 많아 농협 창구가 없으면 은행 일 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농협은 창구 밖 생활 서비스도 넓히고 있다. 올해 4800개가 넘는 농축협 점포를 무더위쉼터로 활용해 고령 농민들이 금융 업무를 본 뒤 쉬어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고령층과 장애인 등의 금융 이용 편의를 높이기 위한 ‘포용금융 동행창구’도 신설한다. 자동문, 경사로, 안전난간, 큰글씨·점자 안내문, 휴게공간 등 편의시설 설치 시 농축협당 1000만 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NH디지털매니저’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교육 인원은 2022년 4493명에서 2025년 2만 7537명으로 늘었다.
정산농협은 금융망 유지에 그치지 않고 농민 소득을 높이는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황인국 정산농협 조합장은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설명했다.
황 조합장은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려면 품질이 먼저고, 품질은 흙에서 시작된다”며 “금융 지원뿐 아니라 농가가 좋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