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우주는 과학과 탐사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주는 국가 안보와 직결하는 전략 영토다.”
김종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는 9일 부산 해운대구 웨스틴조선에서 열린 ‘2026 한국국방우주학회 하계 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연설문은 김지홍 KAI 부사장이 대독했다. 김 대표는 “우주를 장악하는 게 미래 전장의 주도권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우주 국방을 둘러싼 주요국의 패권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주요국과 북한의 우주 군사화 현황을 짚으며, 우주가 경쟁의 장을 넘어 대결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봤다. 그는 “중국은 위성 요격 무기(ASAT) 시험 등 측위·정찰·통신 전 방면에서 위성 전력을 급속도로 강화하고 있고, 북한은 2023년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며 감시정찰 자산을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동맹국도 잇달아 우주사령부를 창설하며 우주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선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도 인공위성을 활용한 우주 감시정찰 역량을 키우고 있다. 2018년부터 추진한 425 사업이 대표적이다. 425 사업은 국방부가 한반도와 주변을 감시하는 정찰용 레이더 위성 4기와 광학 위성 1기를 발사하는 사업으로,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위성 5기를 모두 궤도에 올리며 마무리됐다.
다만 김 대표는 425 사업을 “우리 국방·안보의 분명한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한계를 짚었다. 그는 “통신 측면에서 저궤도 위성통신 체계가 미완성이어서 민간 위성통신에 의존해야 하는 취약성이 있다”며 “발사체 측면에서도 우리 자산을 우리 손으로 원하는 시점에 쏘아 올리는 완전한 자립은 아직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진단은 한국과 주요국의 국방우주 격차를 획기적으로 좁힐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제언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도약을 위한 3대 전략으로 △독자 감시정찰역량 개선 △우주 모빌리티 자립 △지능형 우주 시스템 완성을 제시했다. 독자 감시정찰역량은 초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양산 체제와 저지연·고용량 위성통신망을 동시에 구축할 때 확보할 수 있고, 우주 모빌리티 자립은 재사용·고체 발사체 기술이 핵심이다. 지능형 우주 체계는 AI로 우주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를 가공·통합하는 시스템을 선점하는 데 달렸다. 김 대표는 “전 세계가 출발선에 선 국방우주 경쟁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려면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실행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한국국방우주학회가 한국우주항공산업협회,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와 공동주최했고 서울경제신문이 미디어 협찬을 맡았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 고덕곤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신상범 국방기술품질원장, 곽신웅 한국국방우주학회 대회장 등 정부·군·업계·학계 관계자 300여 명이 행사장을 메웠다.
축사도 우주의 군사적 가치에 무게를 실었다. 손석락 공군참모총장은 박홍준 공군 공중기동정찰사령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우주에서의 군사적 우위가 곧 공중·해상 등 전 영역의 우위를 결정짓는다”며 “공군도 우주감시체계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청장은 “국방우주는 이제 국가 우주 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라며 “우주청도 국방우주를 주요 정책 분야로 삼는 만큼 가장 효율적인 기술·산업 도약의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곽 대회장은 “우주 공간에서 육·해·공군 전력을 모두 통합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며 이번 대회가 군과 산·학·연 교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곽 대회장은 “학회의 자발적인 과학기술 및 정책 연구 활동이 국방우주 산업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며 “이번 행사가 군과 산·학·연 간 밀접한 교류의 장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기조연설 뒤 이어진 패널 토론회에서는 산·관·학계 우주 전문가 8명이 정부의 민간 국방우주 산업 진흥책, 보안 규제 완화 등을 놓고 논의했다. 고광본 서울경제신문 부국장이 토론을 주재했다. 패널들은 주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우주 5대 강국’ 목표를 이루려면 민관이 함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규헌 전 방위사업청 본부장은 “스페이스X 등 글로벌 공룡 기업의 틈바구니에서도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보일 틈새시장은 분명 존재한다”며 “정부 지원이 이런 틈새시장에 선택과 집중돼야 하고, 일부 군 사업을 민간에 이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