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광주 등 호남 지역의 반도체 투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말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같이 ‘서남권’, 즉 호남의 반도체 단지 신규 조성을 공식화하자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투자 규모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국가의 전반적인 산업과 국토 운용 계획을 내세운 것이기에 당연히 여러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잘못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면 매우 바람직한 사례가 될 것이다.
논란의 첫 번째 이슈는 ‘관치(官治)경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는 투자 당사자인 기업들이 부지를 결정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에는 정부가 부지를 먼저 결정하고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논란은 청와대가 자초한 면이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보고회 발표를 이끌어가고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 전날 유튜브 방송에 나가 메가 프로젝트의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게다가 그 유튜브는 시청자가 편향돼 있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당연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빌미를 줬고 일반 국민에게도 그런 비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워낙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발표의 부적절성을 일단 차치하고 사안의 본질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실 최근 세계에서 엄격한 의미의 시장경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미국도 제조업 회생을 위해서 국가가 직접 나서고 중요한 AI 투자 발표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꼭 끼지 않는가. 특히 반도체 공장 같은 대규모 건설 사업에는 부지 확보부터 시작해 전력 및 용수 확보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수적인 부분이 많다. 만일 정부가 국가 전체의 발전 청사진에 의해 반도체 산업단지로 지원하는 지역이 있다면 기업은 국가의 정책에 협조하는 것이 이익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제시하는 청사진이 특정 집단의 사리사욕에 의한 것이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호남 지역이 과거 차별에 의해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국토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지금 투자를 늘리겠다는 명분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제기되는 이슈는 ‘실현 가능성’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임기 안에 마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착공까지만 해도 6년 걸렸던 것이 그 어려움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물론 대만의 반도체 회사 TSMC의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은 28개월 만에 완공됐지만 구마모토에는 용수와 전력이 이미 충분했고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24시간 체제로 건설에 매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호남에는 현재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가 부족하다. 결국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댐 보강이 필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과연 주민들이 수용할 것인가부터 인허가 과정까지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바로 얼마 전에 반도체 산업에서만이라도 주52시간 근로제를 유예해달라는 청원을 거부하지 않았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걸림돌은 주로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즉 관계된 사람들의 인식과 각오가 바뀌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과거 탈원전론자였던 에너지 주무 장관부터 호남 지역에 추가 원전 건설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반도체 사업을 위한 수자원 확보 방안에 대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또 주52시간 제도는 현재 추진 중인 ‘메가특구 특별법’에서 예외 조항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호남 반도체 투자를 비롯한 메가 프로젝트 추진이 집권 여당의 정책 기조가 이념 위주에서 좀 더 실용적인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