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발(發)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기로 하면서 국회의 통제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기금 사용처를 미래 성장동력 창출과 K자형 양극화 해소, 청년 지원 등 미래 투자 등으로 한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향후 수년간 최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막대한 재정을 별도의 틀에서 운영하게 되면 국회의 견제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6일 “향후 미래 성장 동력에 쓰일 미래대응기금을 설치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반도체 추가 세수로 미래 대응 기금 신설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지출 20% 증액 국회 없어도 돼= 문제는 이번 조치에 따라 국회의 예산 심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부에 예산 편성권을, 국회에 예산 심의·확정 권한을 각각 부여하고 있다. 세계잉여금이 발생할 경우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국가채무 상환 △추경 편성 또는 다음 연도 이월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한 국가재정법 규정(제90조)도 행정부의 독주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정부의 기금 신설 방향은 이와 정면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추가세수를 담을 그릇 자체를 ‘기금’ 성격으로 추진하면서 지출 규모가 20%까지 늘어나도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국민연금기금 등 각종 기금을 국가재정법 별표(기금설치 근거법률)에 열거하고 기금의 재원 조달 방식과 운용 원칙 등을 개별법에 담아 관리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도 이 구조에 따라 운용될 가능성이 크다. 간단한 법 개정만으로도 현재 교육교부금이 내국세의 일정 비율만큼 매해 기계적으로 쌓이는 것처럼 반도체발 추가세수가 해마다 흘러들어오는 ‘플랫폼형 기금’으로 설계하겠다는 얘기다.
◇최대 100조원 ‘상시 추경’ 지적도= 추가세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도 관건이다. 정부는 현재 5년 단위 중기재정운용계획상 각 해당 연도의 세입전망을 초과하는 세수를 ‘추가 세수’로 규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현재 중기재정운용계획상 국세수입은 2026년(1차 추경 반영) 415조4000억원, 2027년 412조1000억원, 2028년 434조1000억원 등으로 잡혀 있다. 해당 연도마다 수십조원의 세수가 더 걷히면 그 초과분이 자동으로 미래대응기금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오준호 기본소득정책연구소 소장은 올해 반도체발 세수 증가분을 최대 50조원, 2028년까지 누계로는 10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한 해 예산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 정부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이는 셈이다. 옛 기획재정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책 대응의 신속성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국회의 예산 심의와 견제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정을 중장기적으로 관리·운용하는 틀 외에도 수십조원 규모의 기금을 바탕으로 사실상 연중 추경을 편성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채 상환의무도 건너뛰나= 더 큰 문제는 법으로 규정된 국채 상환 의무가 형해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해당 연도에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추경이나 세게잉여금 처리 원칙에 따라 일정 부분은 국채를 상환해 왔다. 국가재정법은 세계잉여금의 30% 이상을 국채·차입금 원리금 상환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대응기금에 쌓이는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돈은 설계 방향에 따라 국채 상환 의무를 지지 않는 재원으로 남을 수 있다. 세수결손 시 재정을 보완하는 기능을 미래대응기금에 넣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기금 돌려막기’처럼 사후 약방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인 만큼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고 업황이 나빠졌을 떄 다시 국가부채를 늘려야하는 현실에 맞닥뜨릴 수 있다”며 “초과세수가 발생했다면 국가채무를 최대한 상환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