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소재 대학 자율전공학부 학생 A씨는 올 연말 전공 결정 시기에 전자공학부를 택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전자공학부 전공생의 몸값 또한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A 씨 외에도 해당 자율전공학부 내에서는 전자공학부를 택하려는 학생 수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올해 지난해와 올해 신입생들 사이에서 전자공학 지망생이 확실히 늘고 있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호황에 전자전기공학부를 비롯한 전자공학 관련 전공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전자공학부에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어 반도체 업체 취업은 물론 반도체 관련 석박사 학위 취득에도 유리하다. 반면 일선 교수들은 전자공학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이 향후 몇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개설 강의 확대 및 교수 확충 등 관련 인프라를 늘려야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이 가능할 것이라 지적한다.
6일 대학교육연구소가 자유전공 입학 제도를 운영중인 성균관대, 이화여대, 경희대 등 수도권 소재 12개 사립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학교 중 절반 가량에서 전자공학부가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성균관대 자유전공계열 학생 중 57.1%가 전자전기공학부를 1순위로 택했으며 광운대(52.8%), 경희대 국제캠퍼스(52.5%), 경기대 수원캠퍼스(30.3%), 단국대(29.8%), 이화여대(21.5%), 명지대 자연캠퍼스(16.9%) 등에서도 전자공학부가 1순위를 기록했다. 서울경제신문이 별도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성균관대 자율전공 학생들은 전자전기공학부에 이어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11%), 화학공학부(3%), 신소재 공학부(3%), 소프트웨어학과(2%), 융합생명과학과(2%), 기계공학부(1%), 글로벌경제학과(1%), 글로벌경영학과(1%)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휴학 등으로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학생의 비중이 11%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균관대 자율전공 학생 대부분이 자연계열에 몰린 셈이다. 특히 성균관대가 전통의 ‘인문사회계열’ 강자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이공계 선호 현상이 이제는 일반화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를 포함한 이른바 ‘거점 국립대’ 8곳에서도 전자공학부 선호 현상이 뚜렸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경북대 대구캠퍼스 전유전공 입학생의 53.8%가 전자공학부를 택했으며 전남대 광주캠퍼스(46.6%), 충남대(36.5%), 강원대 춘천캠퍼스(21.4%) 등도 전자공학부가 1순위를 기록했다. 단과대학 기준으로 자료를 공개한 서울대는 자율전공 학생 172명 중 40.7%인 70명이 공과대학을 택했다.
이번 조사 결과 산업 트렌드 변화에 비교적 영향을 적게 받으면서도 취업에 유리하다고 평가 받는 경영학부에 대한 선호도 또한 여전했다. 경희대 서울캠퍼스 자율전공학부 입학생 중 20.3%가 경영학과를 택했으며 명지대 인문캠퍼스(27.4%), 상명대(19.9%), 성신여대, 숙명여대(13.6%) 등에서 경영학부 선택율이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전자공학부로의 전공 쏠림 현상은 2년새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전에는 네이버나 카카오, 크래프톤 등의 기업이 주목 받으며 관련 기업 취업에 유리한 컴퓨터 공학부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려대 자유전공 학부생의 33.3%가 컴퓨터 학과를 택했으며 계명대(58.3%), 이화여대(32.8%), 인하대(29.1%), 영남대(22.9%) 등에서도 컴퓨터 학과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서울대 공과대학 입학생 중 72.1%가 컴퓨터공학부를 전공으로 택하며 전기정보공학부(20.9%) 대비 3배 이상의 선호도를 기록하는 등 최상위권 대학일수록 컴퓨터 공학부 강세가 두드러졌다. 한 사립대 입학처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코딩 열풍 등으로 컴퓨터공학부의 인기가 높았던 반면 현재 1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관련 취업에 유리한 전기전자공학 쪽을 택하려는 학생이 많다”며 “학생들이 갈수록 취업동향에 민감해 지는 만큼 신입생들 또한 취업 가능성을 보고 전공을 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 학생 적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전공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지적한다. 교육부가 2년 전 대학혁신지원사업 선정 시 자유전공 정원을 확대한 대학에 별도 가점을 부여하는 ‘자유전공 인센티브’ 방안을 발표하며 관련 모집 인원 확대에 나섰지만, 취업률이나 연봉에 따른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선호도 차이만 더욱 뚜렸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당 학과 교수들은 전기전자공학부 쏠림 현상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난데다 학생의 기초공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학생들이 대거 유입됐다며 수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일부 대학 전지공학부에서는 물리학의 기초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자율전공 학생이 대거 유입되며 정상적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준신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자율전공 배정 학생 중 전지전자공학부로 지원한 학생이 갑자기 늘어나며 관련 전공에 대한 기초가 거의 안돼 있는 학생들이 많아 수업 준비가 쉽지 않다”며 “오픈북 시험 등 여러 조치를 취해 봤지만 시험 평균 성적이 낮아 수준별 수업 등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