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새턴 5호 로켓 전시관에 가면 루나 시어터에 들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이 소련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뒤 절치부심해 달 탐사에 성공한 모습이 상영된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 위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세계 첫 우주 비행사 앨런 셰퍼드, 마지막 유인 달 탐사선(아폴로 17호)에 올랐던 유진 서넌의 육성이 흘러나온다.
영상이 주는 메시지가 인상 깊다. 암스트롱은 “우주 여행의 미래는 새로운 세대의 상상 속에서 쓰여지고 있다. 그것이 아폴로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용기와 상상력, 탐사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넌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사전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지우라고 한다. 여러분 시대에 불가능은 없다”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우주로 나가라는 것이다.
12분짜리 영상이 끝난 뒤 나오는 반응이 압권이다. 아이들은 펄쩍 뛰면서 “나도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고 외치고 부모는 미소로 격려해준다. 영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엄마는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걱정하지만 나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 우주에 커다란 농장을 짓겠다”며 꿈을 이야기한다. 상영관을 나온 뒤 다시 마주한 새턴 5호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1972년 아폴로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54년이 흐른 2026년. 미국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잇따랐다. 아르테미스 2호 발사와 스페이스X의 상장이다. 암스트롱과 서넌이 “너희 세대에 불가능은 없다”며 독려한 덕분에 후배들은 길을 잃지 않고 우주 여행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961년 아폴로 프로젝트 시작 이후 우주 산업을 선도한다는 목표가 이어진다.
아폴로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1960년대 한국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고 있었다. 1965년 미국 고미사와의 합작사인 고미전자산업 설립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시초다. 초기에는 단순한 트랜지스터 조립이 전부였지만 6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삼전닉스(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반도체 열풍은 의대 쏠림이 심각하던 대학 입시에서 반도체 계약학과 경쟁률이 치솟 을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메모리사업부 성과급이 화제가 된 후 부모 손에 이끌려 의대반 대신 삼전닉스 취업이 용이한 영재학교 진학반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들도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도체 열풍의 이면을 보면 걱정스럽다. 삼전닉스에 가려는 것이 반도체 혁신을 이끌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성과급 때문으로 비쳐져서다. 한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가 대학생들에게 어디에 취업하고 싶은지 묻자 모두 성과급을 이유로 삼전닉스를 꼽았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삼전닉스 메모리사업부에 취업하면 휴지통만 비워도 성과급 6억 원 을 받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우주인을 꿈꾸는 미국 아이들과 반도체 회사에 가려는 한국 청년들의 차이는 꿈의 크기와 명확한 목표 의식에 있다. 미국은 우주인이 되어 달·화성을 개발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지구 밖에 구축하려 한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기업에서 억대 성과급을 받겠다고 한다. 반도체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어떤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답하지 못한 채.
서울대 공대 학생들조차 석 박사 진학을 포기하고 삼전닉스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삼수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지방 국립대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에 나서면서 쏠림 속도는 더 빨라질 테다. 인재 확보는 중요하지만 반도체로 무엇을 하고 어떤 응용 산업을 키울 것인지 비전을 세우는 일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메모리 호황이 꺾인 뒤 인재들은 다시 의대로 빠져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