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국내 대형마트 순위 2위였던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월 법정관리에 돌입한 지 약 1년 4개월 만이다. 법원은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2차례 연장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를 비롯해 메리츠금융그룹 등 채권단이 2000억 원 규모 긴급운용자금(DIP)의 구체적인 조달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홈플러스는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홈플러스 직원 1만 2000명이 실직하고 입점 업체 점주,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 전자단기사채 투자자들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법원은 14일간 회생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면 회생 절차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는 3일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회생계획안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영자금으로 최소 약 2000억 원이 필요함에도 현재까지 조달되지 않았다”며 “수정안을 포함한 회생계획안은 수행가능성이 없어서 회생절차를 폐지하는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재판부는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올해 9월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실효가 없다고 판단해 회생절차를 중단했다. 아울러 9월까지 기다렸다가 회생절차를 폐지하면 급여, 조세 등 공익채권은 더 늘어난다. 공익채권은 회생절차 중인 기업에서 일반 회생채권이나 회생담보권보다 우선해 변제받는 청구권을 의미한다. 입점 업체 점주,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 전단채 투자자이 받을 수 있는 몫은 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 부문 매각이 성사됐으나 잔존 사업부에 대한 인수·합병이 이뤄지지 않은 채 영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매출이 감소하는 반면 급여, 물품대금 채무, 조세 등 공익채권이 급증하는 상황”이라며 “관리인은 직원들에게 올해 6월분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래처에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마트 영업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생 재개 가능성 시사 이례적…최후통첩”
다만 재판부는 14일 이내의 즉시항고기간을 설정했다. 즉시항고기간은 채무자회생법 등 관련법에 규정되어 있다. 홈플러스가 자금을 마련해 즉시항고하면 재판부가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김상규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전 수원회생법원장)는 “재판부는 자금 조달 등 사정 변경이 이뤄질 경우 절차를 다시 진행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다”며 “시간이 촉박한 것이 변수”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보도자료에 ‘재도의 고안’(원심법원이 스스로 재판을 고치는 것)을 명시하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홈플러스가 자금 조달 후 즉시항고하면 정당한 이유가 인정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서울회생법원 재판부가 스스로 폐지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심리·결의를 위한 관계인집회 기일을 지정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설명이 법원이 대주주와 채권단이 협의해 자금을 마련하라는 취지에서 강력한 압박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대형로펌 회생전문 A 변호사는 “자금 조달이 잘 되면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례적이다”이라며 “두 달 기다리면 해당 기간 동안의 채무가 쌓이니 14일 안에 결정하라고 최후통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회생전문 B 변호사는 “홈플러스가 이번 기간에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빠른 시일내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 다시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MBK·메리츠, 입장차 좁히지 못해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김병주 회장이 보증 설 경우 메리츠금융그룹이 2000억 원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홈플러스는 3일 “당사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2000억 원의 운영자금 대출을 해주실 것을 간청드린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측은 1000억 원에 대해 회사 차원의 연대보증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이미 김 회장의 개인 증여 등을 통해 수천억원의 자금과 신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리츠금융그룹은 고위험 대출을 늘리면 그만큼 주주 반발에 따른 경영진 배임 책임을 묻게 될 수 있다며 지원 규모를 1000억원으로 제한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대출 실행 전제조건으로 MBK파트너스뿐만 아니라 김 회장의 보증을 함께 요구했는데 메리츠금융그룹은 사측이나 김 회장 측이 이런 의사를 담은 공문을 보낸적 없다는 입장이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 당일에도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생존권 대책 마련해야”
정부의 중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트노조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를 향해 “14일 안에 공적자금 투입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긴급조치를 통해 홈플러스 회생 방안을 마련하라”며 “14일간 긴급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MBK, 메리츠금융은 14일 안에 2000억 원을 즉시 투입하라”며 “정부는 홈플러스 사태 10만 명에 대한 생존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파산시 협력업체·전단채 투자자 몫 없을 수도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회생절차 폐지가 확정되면 홈플러스의 선택은 인수자를 찾거나 사실상 파산을 택해야 한다. 법원이 파산 원인 등을 검토한 뒤 파산을 선고하면 파산관재인이 선임된다. 파산관재인은 경영권과 재산관리권을 넘겨받아 점포와 재고 등 자산을 매각한다.
채권자들의 채권 신고 절차 후 채권자집회와 채권조사 기일이 열린다. 채권자집회에서는 영업 계속 여부 등에 대해 논의한다. 파산관재인은 채권자집회에서 채무자의 재산 상황과 현금화 결과 및 향후 계획, 채권자들에 대한 배당 전망 등을 보고하게 된다. 채권조사에서는 채권자와 채권액을 확정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파산관재인은 이후 확보한 대금을 임금채권과 담보채권, 납품대금 등 법정 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배당하게 된다. 임금·퇴직금·조세 채권 등 재단채권이 우선 변제된다. 김 대표변호사는 “파산 시 보유한 재원을 바탕으로 배당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채권자들에게 충분한 변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파산 시 기준으로 환가할 수 있는 자산이 어느정도인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입점 업체 점주,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 전단채 투자자 등이 돌려받을 수 있는 채권액은 사실상 없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후순위 채권자 격인 전단채 피해자는 4019억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온전히 구제받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홈플러스 납품 중소기업·소상공인 150곳이 아직 받지 못한 납품 대금 규모는 업체당 평균 7억 7400만 원이다. 이들은 대금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 재단채권이 지속해서 늘어나서 최종적으로 변제할 수 있는 금원 자체가 거의 없어 일반 채권을 사실상 변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재단 채권도 다 변제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파산 관재인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메리츠금융그룹이 홈플러스 62개 자가 점포를 신탁 담보로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이 점포 매각 등 담보권 실행 절차를 따로 집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