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카드채 투자를 늘리는 것은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과 자금 운용의 편리성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쌓인 현금을 예금에만 묶어두기보다 금융채에 투자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것이다. 특히 카드채의 경우 입맛대로 만기를 조정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카드채를 비롯한 여전채와 은행채 등 우량 금융채 매수에 수조 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에만 카드채 시장에서 1조 4000억 원이 넘는 물량을 매입한 데 이어 은행채 시장에서도 주요 투자자로 등장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이달 들어서만 삼성카드와 신한·현대·비씨·우리카드 등 주요 카드사의 채권에 1000억~2000억 원 안팎을 투자했다.
카드채는 예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안전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매입한 카드채는 모두 신용등급 ‘AA급’ 이상의 우량물이다. 발행 금리는 모두 4%를 웃돈다. 비씨카드는 4.285%, 신한카드는 4.275%, 하나카드는 4.274% 수준에서 SK하이닉스 투자용 채권을 찍었다.
반면 대기업 법인예금 금리는 상대적으로 낮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법인예금 금리는 3%대 중반이다. 대기업은 거래 관계와 예치 규모 등을 반영해 금리가 정해지는데 최근에는 2%대 후반 수준에 금리가 형성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카드채는 발행 속도가 빠르고 투자자의 자금 운용 일정에 맞춰 만기 구조를 설계하기가 쉽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유동성을 보유한 기업의 자금 운용 수요와 카드채 시장의 특성이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며 “카드채는 발행 의사 결정이 비교적 빠르고 대규모 물량 공급도 가능해 수천억 원 단위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넘치는 현금을 예금만으로 운용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채권 투자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은행권에서는 초대형 법인 자금을 모두 받아내는 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 번에 유입되는 자금 규모가 상당한데 은행 입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다시 운용할 곳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예금금리는 사실상 개별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데 규모가 클수록 은행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수조 원 단위 자금이 들어오면 운용 부담도 그만큼 커져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투자 수요는 카드채를 넘어 은행채 시장으로 확산하고 있다.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18일 SK하이닉스 수요에 맞춰 각각 4000억 원, 2600억 원 규모의 은행채를 발행했다. 발행 금리는 농협은행이 4.03%, SC제일은행이 4.06% 수준이다. 두 채권 모두 2029년 4월 3일을 만기로 설정했다. 카드채 발행 사례와 마찬가지로 연·반기 단위가 아닌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만기를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은행권도 투자자 수요에 맞춰 만기를 세분화해 카드 업계와 유사한 발행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초호황으로 쌓인 SK하이닉스의 현금성 자산이 당분간 채권시장으로 계속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기업어음(CP)과 단기 여전채 등 1년 이하 단기물 위주로 투자해 왔지만 최근에는 2~3년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SK하이닉스가 과거에는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단기물 위주로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만기를 2028년, 2029년까지 늘리고 있다”며 “단순 대기성 자금 운용을 넘어 수익률까지 고려한 투자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