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은 천연물 의약품이 원가 보전조차 힘든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한 알 가격이 100원에도 못 미치는 천연물 의약품이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가 강력한 약가인하 카드를 꺼내 들면서 개발이 완료된 신제품의 발매 여부를 고심하는 상황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열고 종근당의 위염 치료제 ‘지텍’에 대해 “평가 금액 이하 수용 시 급여의 적정성이 있다”고 심의했다. 임상적으로 의약품의 효능이 증명됐지만 심평원이 제시한 금액 이하를 받아들여야 건강보험 적용 논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조건을 단 것이다.
지텍은 녹나무와 육계나무의 줄기 껍질 등을 통해 만든 급·만성 위염 치료제로, 2022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종근이 지텍 개발에 착수한 지 10년 만에 상업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더욱이 2012년 한국피엠지제약의 골관절염 치료제 ‘레일라’가 허가된 이후 10여 년 만에 등장한 천연물 소재 의약품이란 점에서 제약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허가 후 4년 가까이 되도록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통상 신약이 건강보험에 등재되려면 정부와의 약가 협상 단계에서 기존 판매 의약품의 시장 평균 가격 수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지텍의 비교 대상인 기존 천연물 소재 위염 치료제들이 반복된 약가 인하로 정당 100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스티렌의 경우 올 2월 약값이 14.4% 깎이면서 정당 95원까지 내려앉았다. 약평위가 제시한 조건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업계 안팎에선 정당 100원 남짓의 약가를 수용해야 급여 등재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오랜 시간 노력해 온 지텍이 신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며 “가격이나 출시 시점과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제약사들도 마찬가지다. 쑥을 기반으로 만드는 애엽 추출물 성분 위염 치료제는 급여 재평가를 거치며 갈수록 위축되는 추세다. 생약 제제 특성상 유효성분의 혈중농도를 비교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으로 동등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보니 ‘스티렌’ 제네릭 제품 중 대다수는 14% 이상 약가가 깎였다. 설상가상 국내 칼륨경쟁적위산분비억제제(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등 신제품의 공격적인 영업 공세에 밀려 처방 입지가 좁아지면서 시장 철수를 고심하는 회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한때 정부가 개발을 장려하던 천연물 의약품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은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한때 천연물 소재 신약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약가 우대 정책을 추진했다. 식약처도 천연물 성분을 이용해 개발한 의약품 중 조성성분·효능 등이 새로운 경우 허가 시 제출자료 요건과 심사 기준을 신약에 비해 완화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감사원이 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우대 사항이 사라졌고 ‘신약’이란 용어조차 쓸 수 없게 됐다. 2023년 천연물 의약품 가운데 우월성이 입증된 제품에 한해 약가 우대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복지부의 발표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종혁 중앙대 약대 교수는 “오랜 기간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천연물의약품이 급여 재평가의 주요 타깃이 되면서 기업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천연물의약품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평가·지원 트랙을 마련해 개발부터 약가 책정까지 정합적으로 운영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