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상황에 누가 책임을 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최근 만난 한 경찰관은 기자에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금 경찰 조직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 경찰은 이례적인 지휘부 공백 상태를 겪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찰청장 자리는 1년 반 가까이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후임 인선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마저 이달 말 정년 퇴임한다.
단순히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책임 있는 결정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장기화하는 ‘올림픽공원 개표소 시위’와 관련해 정당한 의사 표현은 보호하되 불법행위에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경찰의 신중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은 원칙이 아니라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까지 설득과 경고를 반복할 것인지, 관계 기관의 출입과 업무 수행이 가로막히는 상황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경찰 내부에서는 비상계엄 관련 징계의 후폭풍도 적지 않다. 특히 경비 기능을 중심으로 “앞으로 누가 책임지고 현장을 지휘하려 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대행 체제에서도 조직은 일상 업무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파급력이 큰 현안은 아니다. 책임을 질 수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앞서는 순간 조직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이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는 시기라는 점이다. 지난해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528명에 달했고 파면·해임·강등 등 중징계 비율도 27.7%에 이르렀다.
유 대행은 여러 차례 “경찰의 수사는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기에 정작 책임을 담당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수장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흔들리는 것은 조직만이 아니다. 결국 국민의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