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상이나 염좌 등 가벼운 자동차 사고 증상에도 8주 이상 장기 치료를 받은 이들 10명 중 9명이 한방병원 이용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 환자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8주 룰’ 도입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한방병원을 중심으로 보험금 누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삼성화재(000810) ·현대해상(001450) ·KB손해보험·DB손해보험(005830) 등 4대 손해보험사에서 지난해 8주 이상 치료를 받은 자동차 사고 경상 환자 가운데 한방 또는 양·한방 협진 인원은 12만 7421명으로 전체의 90.3%를 차지했다.
세부적으로 △양방 1만 3728명(9.7%) △한방 5만 8345명(41.3%) △양·한방 6만 9076명(49%) 등이다. 양·한방의 경우 한방병원의 협진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80~90% 안팎의 경증 장기 치료 환자가 한방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양방과 한방은 치료비 격차도 컸다. 지난해 보험 4사의 8주 초과 경상 환자 중 양방을 이용한 이들의 치료 금액은 167억 6100만 원으로 전체의 4.5%에 그쳤다. 반면 한방은 1158억 4100만 원(31.4%), 양·한방은 2364억 2900만 원(64.1%)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인당 치료비 또한 양방은 120만 원인 데 반해 한방은 200만 원, 양·한방은 340만 원에 달했다. 양·한방 협진의 경우 양방에 비해 치료비가 2.8배나 높다.
장기 치료 환자와 치료비가 한방병원에 집중되면서 과잉 진료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한방 협진은 한방병원에서 MRI 등을 촬영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벼운 부상에도 향후 합의금이나 보험금 지급을 고려해 한방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정 한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도 존재한다. A 한방병원은 지난해 8주 이상 치료를 받은 경상 환자 1만 8434명을 진료해 전체 환자의 13%를 차지했다. 치료비도 538억 원으로 전체 장기 치료 진료비(3690억 원)의 14.6%에 달했다. 인당 치료비 역시 290만 원으로 양방 평균 대비 2.4배 높았다.
경상 환자는 자동차 사고 상해 등급 12~14급에 해당하는 환자로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경우를 말한다. 대한의사협회 진단서 작성 지침은 염좌 치료 기간을 통상 4주로 보고 있으며 산재보험 기준에서도 최대 6주 이내 요양 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설문조사에서도 경상 환자의 적정 치료 기간으로 8주를 꼽은 응답이 96%에 달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은 경상 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을 경우 추가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8주 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본인 부담이 거의 없어 불필요한 장기 치료를 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학계가 환자 치료권 침해와 의학적 근거 부족 등을 이유로 반발해 시행 시점이 하반기로 연기된 상태다. 현재 관련 시행령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를 마쳤으며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시장에서는 8주 룰 도입 지연이 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대형 손보사 4곳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2023년 79.9%에서 2024년 83.3%, 지난해 87.1%로 상승했다. 올해 3월 말 기준 손해율도 85.9%로 전년 동기 대비 3.4%포인트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사업비 등을 고려할 때 자동차보험의 손익분기점 손해율을 8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인 만큼 손해율 악화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 경우 선량한 자동차보험 고객들의 보험료 부담만 커지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앞서 보험사들은 올 들어 1%대 자동차보험료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일부 과잉 진료에 따른 비용이 결국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며 “8주 룰 시행이 늦어질수록 제도 공백에 따른 보험금 누수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