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원 플랫폼이 이중의 위기에 직면했다. 안방 시장은 유튜브뮤직·스포티파이·애플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에 빠르게 잠식되고 있고, 해외 시장에서의 존재감 확보는 요원한 상황이다. K팝이 글로벌 장르로 성장하며 소비의 중심축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음원 플랫폼은 여전히 내수 시장에 갇혀 있는 것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4대 엔터테인먼트사의 매출 구조는 이미 글로벌 시장 중심으로 재편됐다. 하이브(352820)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 )·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 )·YG엔터테인먼트(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 )의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4개사의 전체 매출 가운데 해외 비중은 60% 이상으로 집계됐다. K팝의 주 수익원이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갔다는 의미다.
국내 음원 플랫폼의 해외 매출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음악 서비스 부문 매출을 기준으로 지니뮤직의 해외 매출 비중은 18%에 그쳤다. 플로는 2%, 벅스는 0%였다. 멜론은 해외 매출 비중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K팝은 전 세계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담아내야 할 국내 음원 플랫폼은 여전히 내수 의존형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 소비자가 국내 음원 플랫폼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멜론·지니뮤직·플로·벅스 등 주요 국내 음원 플랫폼은 대부분 한국어 중심 인터페이스로 설계돼 있다. 국내 휴대전화 번호나 국내 신용카드를 전제로 한 본인 인증·결제 절차가 요구되거나 해외 앱스토어에서 앱 다운로드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K팝 음원을 대부분 확보한 상황에서 해외 팬들이 굳이 국내 플랫폼을 이용할 유인은 크지 않다. 멜론이 텐센트뮤직과의 제휴를 통해 동아시아권 일부에 음원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글로벌 이용자가 멜론으로 직접 유입되기는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이는 국내 음원 차트의 신뢰도 문제로 이어진다. 해외 음원 청취가 국내 차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다 보니 국내 음원 차트가 K팝의 글로벌 인기를 온전히 보여주기 어려운 구조가 되서다.
또 연령대별 이용 플랫폼 차이도 격차를 키우고 있다. 2025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멜론은 50대 이상에서,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은 10~20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에서도 젊은 층일수록 유튜브뮤직·스포티파이·사운드클라우드 등 해외 플랫폼 이용 비중이 높은 반면 연령대가 높을수록 국내 서비스 이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플랫폼별 이용자 연령 구조 차이는 장르 소비의 차이로도 연결된다. 장르 선호 조사에서 발라드는 전체 연령대 기준 39.5%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특히 40대 47.8%, 50대 57.1%, 60대 43.6%로 중장년층에서 강세가 두드러졌다. 트로트 역시 60대에서 28.5%의 높은 선호도를 기록했다. 국내 차트가 글로벌 시장의 소비 흐름과 비교해 중장년층의 반복 청취와 내수형 장르 소비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반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발매된 지 수년이 지난 메가 히트곡이 반복적으로 상위권에 머물며 신곡의 진입을 제한하는 ‘콘크리트화’ 현상이나 글로벌 신곡의 유행 반영이 늦은 ‘후행 차트’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차트와 글로벌 차트 간 디커플링 현상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해외 플랫폼에서 빠르게 반응이 오는 곡이라도 국내 대표 음원 차트에서는 뒤늦게 성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코르티스의 신곡 ‘레드레드’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곡은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송 코리아’ 차트에 65위로 진입한 뒤 발매 일주일 만에 1위에 올랐다. 애플뮤직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톱 100 코리아’ 차트에 72위로 진입한 뒤 발매 6일 만에 정상에 올랐다. 반면 멜론 일간 차트에서는 332위로 출발해 일주일이 지나서야 100위권 안에 진입했다. 1위에 오르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차트 괴리가 해외 이용자 유입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음원 차트는 이용자가 최신 유행곡을 확인하고 소비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곡이 국내 플랫폼 차트에서 충분히 노출되지 않을 경우 해외 이용자 입장에서는 해당 플랫폼이 현재의 음악 소비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국내 음원 플랫폼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글로벌 음악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는 동시에 차별화된 기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음원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만으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이 어렵다는 것이다.
김정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음원 스트리밍 일변도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 글로벌 음악 소비 트렌드는 플랫폼별 역할이 세분화되는 추세”라며 “스포티파이는 글로벌 음악 발견과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플레이리스트 진입 통로, 틱톡은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트렌드 발화점, 애플뮤직은 고관여·고음질 청취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교수는 “K팝은 음원, 뮤직비디오, 숏츠, 공연, 팬 커뮤니티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라며 “국내 음원 플랫폼도 이 같은 생태계에 맞춘 특화 기능을 갖춰야 글로벌 소비자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